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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눈] 아쉬운 영화계 '조로현상'
입력2006-12-12 16:35:33
수정
2006.12.12 16:35:33
지난 11월20일 미국 독립영화계의 거장 로버트 알트먼 감독이 타계했다. ‘플레이어’ ‘숏컷’ ‘고스포드 파크’ 등 숱한 명작을 남긴 그의 죽음은 마지막까지 현역으로서 영화와 함께한 것이었기 때문에 더 의미가 컸다. 82세의 노구를 이끌고 완성한 그의 유작 ‘프레리 홈 컴패니언’은 깊은 노년의 성찰로만 가능한 울림이 가득한 영화였다.
대한민국 영화계의 거장 임권택 감독. 그는 현재 100번째 영화 ‘천년학’을 촬영 중이다. 그런데 그가 처한 현실은 80세가 넘어서도 열정적으로 영화를 만들 수 있었던 알트먼과는 판이하다. 100번째 작품으로 성대히 촬영에 들어가도 모자랄 천년학은 투자에 어려움을 겪으며 제작에 큰 난항을 겪어야 했다. 결국 영화계의 뜻있는 인사들이 뭉치고 배우들이 개런티를 깎아가며 촬영을 성사시켜야만 했다. ‘나이든 감독의 작품으로는 돈을 벌 수 없다’는 영화계의 뿌리깊은 믿음은 칸 영화제 감독상에 빛나는 세계적 거장조차 피하지 못했다.
임 감독이 이럴진대 다른 노장 감독들은 말할 것도 없다. 80~90년대를 풍미했던 명감독들의 복귀 이야기를 듣기는 매우 힘들다. 올 여름 ‘겨울나그네’의 곽지균 감독이 ‘사랑하니까 괜찮아’로 복귀한 정도다. 80년대 최고의 흥행 카드였던 배창호 감독은 사비를 털어 만든 영화를 2년 만에 극장에 걸며 가까스로 영화계에 돌아왔다.
알트먼과 국내 노장 감독들의 이런 차이는 바로 우리 영화계의 지나친 상업화 문제와 직결된다. 바로 극장에 올려 짧은 기간에 수익을 올릴 수 있는 영화를 선호하는 현재 영화계의 분위기에서는 노장 감독의 설 자리는 제한받을 수밖에 없다. 극장에는 거장의 깊은 성찰이 담긴 작품 대신 젊은 재미만 가득한 코미디나 액션물이 넘친다.
이 같은 분위기는 또 젊은 감독들을 옥죄는 결과도 낳게 한다. 올해 각종 영화상 시상식에 이름을 올리고 있는 30대의 한 젊은 감독은 “10년 후 어떻게 될지 모르기 때문에 한해라도 많은 작품을 만들어야 한다”고 고충을 토로했다. 영화계의 일종의 ‘조로현상’이 남긴 상흔은 노장, 젊은 감독을 가리지 않는다.
알트먼의 최고의 작품은 대부분 60세가 훌쩍 넘었던 90년대 이후 만들어졌다. 70세가 훌쩍 넘은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현재도 역작들을 쏟아내고 있다. 이렇게 나이든 이후에도 활발히 활동하는 노장들을 만날 수 없는 우리 영화계 상황이 아쉽다. 어쩌면 우리는 깊은 연륜에서만 얻을 수 있는 삶에 대한 성찰이 담긴 영화를 볼 수 있는 기회를 스스로 빼앗고 있는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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