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2년 7월21일 캐나다 오타와. 영연방 8개 국이 모였다. ‘대영제국 경제회의’를 갖기 위해서다. 한달 동안 이어진 회의의 산물은 오타와협정. 12개 조항을 담았지만 핵심은 단 한가지. 영연방 특혜관세다. 최초의 블록 경제, 스털링 블록(Sterling Block)이 이렇게 생겨났다. 오타와협정의 내용은 ‘이웃이야 어찌 됐든 우리끼리 뭉쳐 살자’는 것. 영연방 국가 간에는 낮은 관세를 매겨 수입품을 원천봉쇄하자는 보호무역주의의 발로다. 세계 자유무역을 이끌던 영국은 왜 극단적인 보호무역으로 돌아섰을까. 미국이 원인을 제공했다. 1929년 주가 대폭락으로 인한 대공황에 빠진 미국은 수입품에 최고 500%의 관세를 부과할 수 있는 홀리 스무트법을 1930년 제정하며 자국산업 보호에 나섰다. 당연히 모든 국가가 1차 대전 이후 세계 최강으로 떠오른 미국의 뒤를 따라 관세를 올리고 영국은 아예 혼자가 아니라 영연방 전체로 대응하고 나섰다. 그 결과물이 오타와협정. 오타와협정은 성공했을까. 단기적으로는 그랬다. 영연방의 수지가 반짝 좋아졌으니까. 문제는 보복이 보복을 낳고 패거리가 다른 패거리를 자극하는 통에 세계무역 규모가 80%나 줄어들었다는 점. 나락으로 떨어지는 경제와 ‘우리만 살자’는 행태는 상호불신ㆍ군비경쟁으로 이어져 결국 2차 대전을 낳았다. 일본이 만주사변ㆍ중일전쟁을 일으킨 원인을 호전성보다 엔화 블록을 만들려는 의도라고 보는 시각도 있다. 오타와 회의는 대공황-무역전쟁-전쟁이라는 최악 시나리오의 연결고리였던 셈이다. 오타와회의로부터 75년이 지난 오늘날, 자국이기주의는 사라졌을까. 그렇지 않다. 보다 교묘해졌을 뿐이다. 약육강식의 논리가 여전한 국제사회ㆍ무역전쟁에서 한국의 좌표는 과연 어디에 있을까. 두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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