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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한미FTA, 정치적 책임
입력2006-08-22 16:31:19
수정
2006.08.22 16:31:19
현대 민주주의는 1인 1표라는 정치적 등가성을 주요 원리로 한다. 수천만의 소중한 한표 한표가 모여 대통령을 선출하니 간발의 차이로 당락이 결정 난다 해도 그 누구도 정당성에 이의를 제기하기 힘들다. 해서 제대로 할라치면 한국의 대통령은 그 능력과 비전에 따라 할 일이 대단히 많다.
단 여기에는 조건이 있다. 주요 정책에 있어 자신을 선출한 다수 국민의 정치적 신임에 부응해야 한다는 점이다. 또한 그러한 정책을 당선자는 공약으로 이미 사전에 제시한 바 있다. 이처럼 공약을 정책적으로 잘 실현시켜 유권자의 민주적 위임에 부응하는 기제를 정치적 책임성이라고 한다.
공약 뒤집어 정권 지지율 하락
노무현 정권의 정치적 책임성을 지수로 환산한다면 어느 정도일까. 대통령의 현재 국민적 신임은 단순지지도로 평가할 수 없지만 아무리 좋게 봐도 20점을 못 넘는 게 현실이다. 이 정도면 여당의 차기 집권 가능성은 사실상 물 건너간 거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과반에 가까운 의석을 차지하고 있음에도 보궐선거 결과 36:0, 지지율 10%를 약간 상회하는 것이 집권당의 현주소다.
이러한 사태가 발생한 원인은 어디에 있을까. 가장 주된 이유는 노무현 정부가 핵심 지지층의 여망과는 달리 공약을 실현시키기는커녕 뒤집기는 다반사고 급기야 반대 세력의 핵심 정책까지 정권 말기의 최대 역점사업으로 들고 나오는 한편의 코미디 같은 일이 벌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새만금간척사업을 재검토하고 비정규직의 눈물을 닦아주겠다고 했다.
스크린쿼터는 문화 다양성 차원에서 현행 규정을 유지할 것이라고 단호히 말했다. 대통령이 된 후, 다 뒤집었다. 참여정부라고 했던가. 그런데 여기에 어디 국민 참여가 있었나. 부안 방폐장 사태는 이 정권의 국정지표인 무참여ㆍ무능력ㆍ무책임, 이른바 3무(無)정책의 대표 사례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은 3무정책의 대단원에 해당한다. 어느 날 갑자기 대통령은 한미 FTA 협상을 하겠다고 TV에 나와 일방적으로 국민들에게 통고했다. 본격적인 협상도 해보기 전에 통상 현안이라는 명목 아래 일부 광우병이 의심될 수 있는 쇠고기 수입 재개를 포함, 4대 선결 요건을 수용하면서 구체적인 한미 FTA 협상 내용은 국익을 위해 비밀에 부치겠다고 했다.
반대 운동이 턱에 차오르자 언론까지 조작하기에 이른다. 마지막, 한미 FTA가 타결되지 않으면 과거 외환위기와 같은 일이 다시 초래될 것이라고 대국민 협박까지 해대면서 급기야 통치 행위라고 강변하기에 이른다.
하나만 묻기로 하자. 한미 FTA를 추진하는 주된 이유 가운데 하나가 한국의 낙후된 서비스산업을 미국 서비스산업과의 경쟁을 통해 구조조정 하겠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한국의 서비스산업이 문제가 있다는 증거를 제대로 대본 적이 있는가. 한국의 공교육시스템은 경제 성장의 최대 견인차라 할 수 있는 수많은 인재들과 질 좋은 노동력을 양성했다. 의료시스템은 최상의 의료서비스는 제공하지 못했을망정 빈곤 억제의 최저선 역할은 하고 있다.
통상절차법 시급히 제정해야
더구나 전기ㆍ통신ㆍ상수도로 대변되는 한국의 공적서비스 체계는 공공성과 효율성이라는 두 마리의 토끼를 잡아 오히려 경이의 대상이다. 조류독감 등 전세계를 휩쓸고 있는 전염성 질환에 유독 한국이 안전지대로 남아 있는 이유는 유능하고 책임감 있는 방역 요원들의 가히 철인에 가까운 ‘공적서비스’에 힘입은 것이다. 질 좋은 서비스란 바로 이런 걸 두고 하는 말이다.
3무 정권하에서 한미 FTA가 체결되는 사태를 막기 위해 연대하자. 무엇보다 국회는 국민에 대한 정치적 책무를 다하기 위해 통상절차법을 시급히 제정해야 할 것이다. 또한 여당은 여당대로 재집권을 위해, 야당은 야당대로 자신들의 집권 이후 제대로 된 협상을 해야 한다고, 기업인들은 실익이 없기에, 노동자ㆍ농민은 생존권이 파탄 나기 때문이라고. 이유는 무엇이라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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