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992년 미국 대선에서 40대의 빌 클린턴 민주당 후보는 '문제는 경제야, 바보야(It's economy, stupid)'라는 명확한 선거 구호로 재선을 노리던 조지 H W 부시 대통령을 꺾었다. 이제 내년 미국 대선 어젠다는 민주·공화당을 막론하고 '바보야, 문제는 중산층이야'로 모아지고 있다. 소득 불평등 심화로 사회불만이 고조된데다 중산층 추락으로 경제성장이 지연되고 '아메리칸 드림'이라는 특유의 역동성마저 사라졌다는 위기감의 발로다.
미 연방준비제도(Fed·연준)에 따르면 미국인 상위 10%의 2013년 세전 소득은 1989년보다 34% 늘었지만 40~60% 중산층은 1% 증가하는 데 그쳤다. 또 상위 10% 부자가 미국 전체 부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50% 정도에서 61.9%로 상승한 반면 하위 80%는 약 40%에서 26.2%로 추락했다.
재닛 옐런 연준 의장이 "미국 소득과 부의 불평등은 100년 만에 최고 수준에 근접했다"며 "저소득층의 계층 상승이 더 어려워지면서 '기회의 균등'이라는 미국적 가치가 위협 받고 있다"고 경고했을 정도다. 이 때문에 최근 뉴욕타임스(NYT)의 여론조사에 따르면 부의 분배를 요구하는 미국인들의 비율은 3분의2에 달했다.
사회의 '허리'인 중산층이 얇아지면서 미 경제의 70%를 차지하는 소비에도 부담을 주고 있다. 미 최대 사모펀드 블랙스톤의 바이런 윈 부회장은 "실업률 하락에도 느린 임금 상승률 때문에 미 가계의 소득 수준은 2008~2009년의 경기침체 이전보다 낮은 수준"이라며 "수요 부족이 미 경제의 가장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올해 신년 국정연설의 화두도 '중산층 경제(the middle class economics)'였다. 그는 부자·대기업 증세를 통한 중산층 소득 증대, 중소기업 지원, 대학 등록금 감면, 교육기회 확대, 최저임금 인상 등의 계획을 내놓았다.
미 대선 레이스가 달아오르면서 '중산층 복원'은 더욱 뜨거운 화두가 되고 있다. 민주당의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은 대선 출사표에서 "힘든 노동에 종사하는 미국인이 중산층이 될 수 있도록 임금을 올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공화당의 젭 부시 전 플로리다 주지사도 "열심히 일하는 사람들이 보상 받는 경제성장을 이루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중산층 소득 향상을 위한 해법은 엇갈리고 있다. 민주당 유력 주자들은 '좌클릭'하고 있다. 이른바 '힐러리노믹스'의 핵심도 '성장과 공정경제의 동시 구축'이다. 구체적으로는 최저임금 인상과 사회안전망 확충, 최상위 부유층의 편법 절세 규제, 월가 규제, 근로자의 대기업 이익 공유, 10년간 대학 학자금 3,500억달러 지원 등이다. 2012년 한국 대선 때 박근혜 대통령의 경제 민주화 공약을 연상하게 한다.
반면 공화당은 전통적 성장 이론인 '트리클 다운(낙수효과)'을 내세운다. 규제완화와 세제감면을 통해 대기업 투자와 고소득층 소비가 늘어나야 경제가 살고 중산층 소득도 향상된다는 것이다. 부시 전 주지사의 경우 1,900만개 신규 일자리 창출과 성장률 4% 달성을 내세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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