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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각] 또 하나의 계급 비정규직 '을'의 절규


최근 국정감사에서 뜨거운 감자로 떠오른 사건이 하나 있다. 중소기업중앙회에서 비정규직으로 일했던 20대 중반 여직원이 퇴사 후 한 달여 만에 자살한 사건이다. 그는 아버지뻘 되는 중소기업 대표와 직장상사로부터 수차례 성희롱을 당했다고 한다. 그럼에도 정규직 전환의 희망을 안고 모멸감을 견디다 모든 꿈이 물거품처럼 사라지자 결국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

'최선을 다했다. 2년은. 그런데 아주 24개월 꽉 채워 쓰고 버려졌네'라고 쓴 그의 유서에서는 정규직 전환의 꿈이 사라지면서 살아갈 이유를 잃게 된 '비정규직의 절규'가 읽힌다. 박근혜 정부의 정책과제인 '고용률 70% 달성'은 '여성'과 '청년'에 방점을 찍고 있지만 이번 사건을 계기로 대대적인 점검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중기중앙회에서도 '갑'으로 군림하는 중소기업 대표를 상대하는 업무를 맡은데다 성희롱의 직접적인 대상이 되는 여성이라는 굴레까지 더해진 '철저한 을'이었던 점, 치열한 취업전선에서 어떻게든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 치는 25세 여성 앞에 '정규직'의 보이지 않은 높은 벽이 존재했다는 사실은 '고용률 70%'라는 구호를 부끄럽게 하는 현실의 '민낯'이다.

실제 현장에서 비정규직 문제는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이다. 우리나라 비정규직 노동자는 591만명(3월 말 현재)으로 전체 임금 노동자의 33%, 이 가운데 여성은 317만7,000여명에 달한다. 더구나 우리 사회에서 비정규직은 한번 빠지면 벗어날 수 없는 '신분의 덫'으로 작용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비정규직 10명 중 2.2명(22.4%)만 3년 뒤 정규직으로 '신분상승'이 이뤄진다. 더 큰 문제는 비정규직 3년 뒤 실직한 노동자의 비율이 26.7%로 정규직 전환 비율보다 훨씬 높다는 점이다. OECD 대부분의 나라에서는 비정규직이 정규직으로 가는 사다리 역할을 하지만 우리는 정규직으로의 이동이 거의 막혀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난 2007년 제정된 '비정규직 보호법'은 시행 6년이 지났지만 당초 입법 취지를 살리지 못한다는 비판에 직면해 있다. 이에 정규직 계약기간을 종전의 2년에서 3년 혹은 4년으로 연장하거나 정규직 전환율에 따른 인센티브 부여 등 보완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기업고용 책임지수'를 만들어 목표치대로 정규직 전환을 하지 않는 기업에 '불안정 고용 유발세(가칭)'를 부과하는 등 제재를 가해야 한다는 주장까지 나오는 실정이다.

'고용률 70%'가 선진국 대열에 진입하기 위한 필수조건이라는 사실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다. 하지만 '70%'라는 숫자에 집착해 '숫자 맞추기'식 고용 정책이 쏟아지고 있는 게 아닌지 철저한 자기반성이 필요하다. 그런 측면에서 고용 정책은 양적 확대 못지않게 질적 개선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노동시장의 불안정성 가속화와 그로 인해 유발되는 사회갈등 심화가 우리 사회에 언제, 어떤 방식으로 세월호 참사와 같은 비극을 가져올지 모르기 때문이다. 이번주 정부가 비정규직 종합대책을 내놓는다고 한다. 이번 대책이 비정규직 문제에 대한 근본적인 해법을 내놓을지, 아니면 또 다른 정책의 '싱크홀'로 전락할지 지켜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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