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자르 프랑크(1822~1890)의 바이올린 소나타 A장조가 살구빛 모시 한복을 곱게 차려 입은 '바이올린의 여제' 정경화(63ㆍ사진)의 손끝에서 때로는 폭풍우가 몰아치듯이, 때로는 세상의 번민을 잠재울 것 같은 따뜻한 포옹이 되어 객석을 감싸안았다. 지난 5일 저녁 대관령국제음악제가 펼쳐지고 있는 강원도 평창의 알펜시아 콘서트홀은 바이올리니스트 정경화와 피아니스트 케빈 케너의 듀엣 연주에 심취한 700여명의 관객들로 가득 찼다. 손가락 부상으로 6년 만의 공백 끝에 고국 무대에 선 정경화는 연주하는 동안에도 끊임 없이 관객들과 시선을 맞추면서 객석을 휘어잡는 카리스마를 내뿜었다. 한국이 낳은 세계적인 바이올리니스트이자 현재 줄리어드 음대에서 후학을 양성 중인 정경화 교수는 지난 6일 오후 알펜시아 콘서트홀 예술감독실에서 서울경제와 가진 단독 인터뷰에서 "손을 다쳐서 연주를 할 수 없던 상태였는데 이번에 고국에서 연주에 나서게 된 것은 스스로도 믿어지지 않을 만큼 감격적인 일"이라며 "얼마 전 돌아가신 어머니를 비롯해 제가 사랑하는 모든 분들에게 연주를 바친다는 심정으로 연주에 몰입했다"고 밝혔다. 오랜 공백기를 겪으면서 정 교수는 오히려 한결 여유로워졌다고 한다. "이제는 연주하는 동안 내 손 안에 청중들의 마음을 모을 수 있다는 확신이 든다"는 그는 "훨씬 여유로워지고 타인의 작은 실수에 대해서도 배려할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세계적인 콩쿠르에서 탁월한 성과를 낸 후배들에게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손열음이나 신현수 등 젊은 연주자들 모두 세계 어느 무대에 내놓아도 뒤지지 않을 만큼 재주가 많아요. 해외 클래식계에서도 한국 연주자들이 열정적이고 탁월한 기량을 발휘한다는 점을 높이 사고 있습니다. " 하지만 세계 무대에 서기 위해선 각기 다른 문화를 온 몸으로 흡수하는 열정과 노력이 뒷받침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음악적인 테크닉은 한국 내에서도 얼마든지 배울 수 있지만 세계적인 연주자로 성장하기 위해선 클래식 선진국의 문화를 내 것으로 받아들여야 한다"며 "소리뿐 아니라 미적인 부분, 그 나라 특유의 냄새 등 모든 것을 흡수해 어떤 무대에서도 당당하게 자신의 연주를 해낼 수 있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특히 정 교수는 '예술가'가 되기보다는 '예술인'이 되기 위해서 애써 줄 것을 후배들에게 당부했다. "예술인은 예술에 복종하는 사람이고, 예술가는 군림하는 사람"이라고 규정한 그는 "자신의 분야에서 진정한 예술을 빚어내기 위해선 겸손과 인내, 뜨거운 갈망을 갖고 충실하게 바탕을 쌓아나가야 하는 것이 진정한 예술인의 자세"라고 지적했다. 대관령국제음악제 공동예술감독으로서 정 교수는 한국을 대표하는 세계적인 클래식 축제로 키우려면 다방면의 후원이 뒷받침돼야 한다는 주장도 폈다. "세계적인 음악제를 보면 톱 클래스 수준의 아티스트를 초빙할 수 있는 여건이 조성돼 있어요. 음악제의 명성뿐 아니라 기업 차원의 후원도 활발하지요. 대관령국제음악제를 한국을 대표할 수 있는 세계적인 클래식 축제로 키우기 위해선 세계적 아티스트 섭외와 충분한 기업들의 후원이 필수적입니다." 한편 정경화 교수는 언니 정명화 교수와 함께 지난 5월 타계한 어머니 이원숙 여사를 기리는 뜻에서 이르면 오는 10월께 '어머니 추모 콘서트'를 개최할 계획이다. 정명훈 서울시향 예술감독도 참여할 예정으로, 공연장이 확정되는 대로 구체적인 일정을 진행할 예정이다. "부모님이 음악을 사랑하셔서 자식들이 문화적 소양을 갖추도록 키우셨고 특히 어머니는 미래를 내다보는 안목으로 자식들을 예술인으로 열심히 교육시키셨습니다. 오늘의 저희를 있게 한 어머니를 그리는 뜻 깊은 연주회가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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