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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세상] 때묻지 않은 맑은 동심으로 돌아가자

■ 머리가 해만큼 커졌어요 / 한택수 지음, 시로 여는 세상 펴냄


"나는 라만차의 학생/ 돈키호테,/ 지구가 하늘을 감싸고 도는 시대를/ 살았지요// 찢어진 종이에 쓰인 글자까지/ 찾아 읽은 나는/ 머리가 해만큼 커졌어요// 나의 벗 산초여/ 우리의 적(敵)은 어리석음,/ 달려가자/ 풍차를 향해,// 저 못된 거짓에 창을 겨누자" ('머리가 해만큼 커졌어요-돈키호테1')

시인 한택수의 첫 동시집의 첫 장을 장식한 작품이자 시집의 표제가 된 '머리가 해만큼 커졌어요'다.

1985년 시 전문 월간지 '심상(心象)'을 통해 등단한 작가는 앞서 시집 '폭우와 어둠의 저 너머 시', '그리고 나는 갈색의 시를 썼다'를 비롯해 시선집 '괴로움 뒤에 오는 기쁨' 등을 선보였다.

저자는 이번 동시집 출간에 대해 "습작 시절 써 보았던 동시들과 아이를 키우면서 틈틈이 쓴 것들을 모아 한 권을 채우게 됐다"며 "시인에게 있어 마음의 고향인 어린 시절을 돌아보며, 우리의 인생이 싹텄고 또 성장한 그 시절의 눈으로 지금의 나를 보게 한다"고 말했다.

"사막에 온 지/ 벌써 일 년이 지났어요// 해가 지자/ 별들이 듬성듬성/ 떠올랐어요// 아저씨와 나는/ 우물을 찾아 나섰고요// 난 이제 곧/ 나의 별로 되돌아갈 거예요" ('사막-어린왕자1')



4부로 나뉜 총 57편의 동시들은 이처럼 '어린 왕자'나 '허클베리핀의 모험', '돈키호테', '안데르센 동화', '이솝 이야기' 등 고전 문학 작품이 소재다. 누구나 기억하고 있을 만한 어린 시절의 이야기들을 삶의 '토양'으로 삼고 그 안에서 삶을 바라보는 근원적인 시선과 순수함을 캐낸 작가의 성찰이 돋보인다.

동화와 동시처럼 맑은 인생을 살고 있는 인물들에 대한 조명도 담았다. "정말 진정한 진실은/ 내가 지구에 살고 있다는 거예요// 해와 달과 별이/ 내 이웃이지요// 정말 진정한 진실은/ 내가 나 자신을/ 사랑한다는 거예요// 지구와/ 달과 별과/ 햇빛이/ 내 인생이고요"라고 전개되는 시 'JJJ'는 프랑스 소설가 베르나르 베르베르를 두고 쓴 시다. 또 "다리 아픈 사람 없었으면 좋겠다/ 암 걸리는 사람 없었으면 좋겠다// 조약돌 같은 사람들/ 오래오래 살았으면 좋겠다"는 시는 소아마비와 척추암을 앓고 지난해 타계한 영문학자 장영희씨를 소재로 썼으며 제목마저 '장영희'다.

삶의 구석구석에서 소재를 채집한 저자는 "내가 쓴 동시들이 푸릇한 자연과 책 속에서 커가는 어린이들에게 시냇물 소리 같은 목소리로 들리길 바란다"고 전했다. 8,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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