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사무소 하면 무엇이 떠오르시나요.’ 아마 십중팔구는 우중충한 2층짜리 낡은 회색 건물과 다닥다닥 붙어 있는 민원창구 정도를 연상할 것이다. 수십년간 우리 머리 속에 자리잡은 동사무소는 그런 이미지만큼이나 무겁고 딱딱한 곳이다. 서울 강남구 대치4동 문화복지회관은 그런 면에서 ‘파격’이라고 할 만하다. 지방 시청이나 군청을 멋들어지게 신축하는 경우는 늘고 있지만 일선 동사무소 건물에까지 창조적 영감을 불어넣은 사례는 보기 드물다. 은마아파트 사거리에서 100여m 떨어진 주택가 한복판에 자리잡은 대치4동 문화복지회관은 유난히 눈에 확 띌 뿐더러 다소 낯설은 느낌마저 준다. 연갈색 목재와 유리를 적절히 교차시키며 두른 외관의 조형미가 주변의 보잘 것 없는 3~4층짜리 빌라들과 너무도 대비되기 때문이다. 1~2층은 동사무소로, 3~5층은 주민 커뮤니티와 문화시설로 쓰이는 이 건물의 주제는 ‘소통’이다. 건물 입구에 선 주민은 두 개의 입구 중 하나를 선택할 수 있다. 업무를 보러 온 민원인이라면 1층 로비에 진입하면 된다. 문화강좌에 참석하거나 도서관에 책을 읽으러 왔다면 곧바로 옥외 계단을 통해 위로 올라갈 수 있다. 언뜻 평범해 보이는 이 옥외 계단이야말로 대치4동 문화복지회관을 빛나게 하는 소통의 장치다. 널찍하고 여유로운 계단을 오르다 보면 투명한 통유리벽으로 바깥 풍경이 내다보인다. 설계자의 설명에 따르면 옥외 계단은 “건물 외부에서 건축적 공간, 즉 건물 내부로 진입하는 반(半)건축적 공간”이다. 건물 안에서도 어느 장소에서나 다른 곳의 시선과 소통할 수 있다. 어느 층에서나 위아래를 들여다볼 수 있게 공간이 뚫려 있고 5층 강의실 문을 열고 나오면 머리 위 유리천장으로 햇볕이 쏟아져 들어온다. 주민들은 계단이든 휴게실이든 어디에나 앉아 대화하거나 회의를 할 수도 있다. 설계자인 김상길 에이텍종합건축사사무소 대표는 “동사무소의 권위적 기능을 최대한 축소하는 대신 주민 중심의 공공시설로 꾸몄다”며 “옛날 동네의 골목길처럼 언제든 서로 인사하고 대화할 수 있는 장소를 만들고 싶었다”고 말했다. 아쉬운 점도 있다. 건물 맞은편 경로당과 놀이터를 건물 지하의 열린 공간과 자연스럽게 이으려던 당초 의도가 흉물스럽게 길목을 막아선 컨테이너 박스(방범초소) 탓에 무산돼버렸다. 큰 돈을 들여 예술작품을 지어놓고도 스스로의 가치를 깎아내린 꼴이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