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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12월 11일] 北 화폐개혁의 정치적 셈법

북한 정권이 어려움에 직면해 있다. 밖으로는 민주적ㆍ평화지향적인 세계 정치 및 역동적인 시장질서와 대립하고 있고 안으로는 심각한 경제난으로 촉발된 정치ㆍ경제질서의 파괴를 바로잡아야 하는 절박한 상황이다. 이런 와중에 북한 정권은 안정을 파괴할 수도 있는 화폐개혁을 단행했다. 한국과 세계가 놀라고 북한 주민들도 놀랐다. 경제파탄 책임 기득권자에 돌려 피상적으로 볼 때 이번 화폐개혁은 경제가 너무 어려워 이를 바로잡기 위해 정치적 손해를 감수하면서 취한 경제정책의 하나로 비칠 수 있다. 화폐 액면가를 조정하고 교환한도를 낮춰 화폐 유통량을 급격히 줄임으로써 치솟는 시장 물가를 잡고 국가의 재정공급 능력을 높여 국가계획경제체제 기능을 복원ㆍ강화하려는 것이다. 북한의 국가계획경제체제는 지난 1990년대 초 국제사회주의 경제체제가 붕괴되면서 어려움을 겪어왔으며 이 틈을 비집고 농민시장을 중심으로 한 다양한 형태의 시장이 급격히 확산됐다. 북한 당국이 볼 때 이 시장은 어려워진 국가경제를 대신해 국민들에게 필요한 소비재를 공급하는 긍정적 역할과 국가경제를 좀먹는 부정적 역할을 함께 했다. 폐쇄적인 사회주의 경제의 재생산 과정에서 화폐 공급의 주역인 국가 재정당국이 국가 및 협동기업에 화폐를 공급하면 상품 생산ㆍ유통과정을 거쳐 더 많은 화폐가 회수되는 것이 정상이다. 그래야 확대 재생산이 이뤄질 수 있다. 하지만 북한의 현실은 정반대다. 이유는 두 가지다. 하나는 북한 재정당국이 공급한 화폐의 일부가 기업에 유동자금 형태로 적체돼 있기 때문이다. 국가의 상품과 자원ㆍ시설이 유통가격이 높은 시장으로 끊임없이 흘러 들어가는 것도 원인이다. 북한시장은 낮은 가격의 국가 상품을 빨아들이는 블랙홀 기능을 해왔다. 에너지난ㆍ원자재난 등 생산조건 불비로 상품 생산이 중단된 탓이다. 국가 재정당국은 줄어든 형태로 돌아온 화폐량과 국가기업의 확대 재생산에 필요한 수요 화폐자본량과의 차이를 메우기 위해 화폐증발정책을 지속해왔다. 그러나 시장 통화량만 늘어났지 당국의 재정능력은 끊임없이 떨어지는 악순환이 거듭됐다. 화폐개혁은 이 같은 악순환이 더 이상 버틸 수 없는 수준에 도달했음을 의미한다. 하지만 북한이 화폐개혁을 단행한 데는 시장의 통화량을 급격히 줄여 인플레이션을 잡겠다는 경제적 의도뿐 아니라 훨씬 더 많은 정치적 계산이 깔려 있다. 북한은 고도의 정치국가이고 정치와 경제를 밀접히 연계시켜나가는 국가다. 북한에서는 오래 전에 국가가 정한 정치ㆍ경제질서가 파괴되기 시작했다. 광범위한 사람들이 국가가 정해준 일터에 있지 않고 대낮에 시장에서 상행위를 하거나 상품을 조달하기 위해 통행제도를 무시한 채 전국 방방곡곡을 다니고 있다. 더 심각한 것은 관료들도 지방 말단에서 고위층에 이르기까지 시장 부자들과 결탁해 금품을 받고 있다는 점이다. 한마디로 북한의 시장은 국가 정치질서와 계획경제질서를 파괴하는 온상인 셈이다. 소수 시장부자들 제압 노려 거대한 화폐자본을 축적한 일부 세력은 점점 북한 사회에서 정치ㆍ경제ㆍ사회적 입지를 강화해왔다. 이들은 광범위한 인적 네트워크를 형성, 과거에는 정치권력자들의 전유물이던 특혜와 호강을 누리고 있다. 그나마 가지고 있는 권력으로 이들을 혼내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북한 정권에 강하게 작용하지 않을 수 없다. 이들을 강하게 치되 반발을 최소화하는 방법은 두 가지다. 하나는 북한 경제파탄의 책임을 시장과 시장 기득권자들에게 돌리는 것이다. 다른 방법은 일반주민들에게 피해가 가지 않도록 화폐 교환한도를 절묘하게 정하는 것이다. 그러면 교환한도 범위의 화폐도 없는 주민 대부분의 지지를 배경으로 소수의 시장 기득권자들을 제압할 수 있다. 이것이 북한 화폐개혁의 정치적 셈법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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