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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 금융불신의 계절


13세기 중반 이탈리아 도시국가인 베네치아는 늘어나는 전쟁 비용을 충당하기 위한 방안을 마련하느라 골머리를 앓고 있었다. 당시 대부분의 도시국가들이 자금을 조달하는 방법은 토지 등 현물을 담보로 제공하고 돈을 빌리는 것이었다. 하지만 오랜 기간 동안 전쟁이 이어지면서 담보로 맡길 수 있는 현물에도 한계가 있었다. 이러던 차에 베네치아는 당시로서는 획기적인 방법을 생각해냈다. 바로 정부의 미래 세수를 담보로 상인 등으로부터 돈을 빌리는 것이었다. 베네치아는 1262년 세수를 기반으로 '몬스'라는 이름의 장기채권을 발행해 안정적으로 자금을 조달할 수 있었다. 이것이 바로 미래 수입원을 앞당겨 현금화하는 현대 증권화 기술의 시발점이다.

베네치아에서 시작된 증권화 기술은 이후 피렌체나 제노바 등 다른 도시국가는 물론이고 북유럽과 미국 등 전세계로 퍼져 나갔다.

공시 사전유출 등 잇단 문제

지금은 보편화된 이 같은 금융기술이 13세기 이탈리아에서 정착될 수 있었던 가장 큰 요인은 무엇이었을까. 그것은 바로 신뢰다. 거래 당사자들 간의 믿음을 바탕으로 금융거래 기술이 꽃을 피운 것이다.

이는 오늘날에도 마찬가지다. 상품거래와는 달리 금융거래는 당사자들 간의 신뢰가 깨지면 질서가 흔들릴 수밖에 없다. 지난 2008년 미국을 비롯한 전세계에 충격을 줬던 금융위기가 대표적인 사례다. 당시 투자은행들은 서브프라임모기지라는 부실 자산을 안전한 상품으로 포장해 금융 지식이 부족한 소비자들에게 마구잡이로 판매했다가 주택가격이 급락하면서 금융 시스템 붕괴를 야기했다.

금융의 역사를 장황하게 늘어놓는 것은 최근 국내 금융업계에도 바람직하지 않은 현상들이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증권업계는 물론이고 은행, 저축은행 등 거의 모든 영역에서 금융의 근간이라 할 수 있는 신뢰가 무너지는 현장이 심심찮게 목격된다.

우선 주식시장을 보자. 정부 당국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주가 조작을 비롯한 불공정거래 행위는 좀처럼 줄어들지 않고 있다. 지난해 주식과 파생상품거래와 관련해 금융위원회에 통보된 불공정거래 건수는 342건으로 전년(338건)보다 더 늘었다. 특히 코스닥시장은 전체 불공정거래의 62%를 차지하고 있다. 사정은 올 들어서도 마찬가지다. 상반기 동안 코스닥시장의 불공정거래 사례는 106건으로 전체(148건)의 71.6%에 달한다. 최근에는 코스닥시장 관리를 담당하고 있는 한국거래소 직원이 공시 정보를 사전에 유출하는 사태가 발생하기도 했다. 이 때문에 코스닥시장이 '벤처기업의 인큐베이터'라기보다는 돈 놓고 돈 먹는 투전판으로 전락했다는 지적도 제기되고 있다.



국내 증시에 상장된 중국 기업들은 회계 불투명과 불성실 공시로 인해 투자자들로부터 불신을 받고 있다. 2007년 3노드디지탈을 시작으로 국내 증시에는 모두 15개의 중국 기업들이 상장됐지만 5년이 지난 현실은 참담하다. 중국 기업 가운데 절반에 가까운 7개 기업은 회계 불투명 등을 이유로 한국거래소로부터 제재를 받았고 3개 기업은 거래가 정지된 상태다. 당연히 해당 기업의 주가는 좋지 않다. 15개 중국 기업 가운데 10는 현재 주가가 공모가를 밑돌고 있다. 이 때문에 중국 기업 주식을 샀던 국내 투자자들은 속이 부글부글 끓고 있다.

금융 존립기반 훼손 막아야

금융이 고객들로부터 불신을 받고 있는 것은 이 뿐만이 아니다. 얼마 전 일부 은행들은 아파트 중도금 대출서류를 조작했다가 들통이 나기도 했고 저축은행들은 부실대출 때문에 고객들에게 엄청난 손실을 안기기도 했다.

최근 유럽 위기와 글로벌 경기침체 등으로 우리 금융시장의 불안이 이어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금융권에 대한 투자자들의 불신이 심화된다면 시장의 존립기반이 흔들릴 수밖에 없다. 시장은 한번 망가지기는 쉬워도 이를 일으켜 세우는 것은 매우 어렵다. 정부 당국과 업계는 금융에 대한 투자자들의 신뢰가 더 이상 훼손되지 않도록 노력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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