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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눈] 일당 7만원에 범칙금 3만원

"짐 실으려고 잠깐 대 놓은 건데 그새 딱지를 뗍니까. 7만원 벌어 벌금으로 3만원 내면 나는 뭐 먹고 사냐고요."

동대문시장에서 오토바이로 원단 배달을 하는 김모(58)씨는 경찰이 건네는 이륜차 불법 주정차 범칙금 고지서를 받아 들자 화가 치밀었다. 키만한 높이의 원단 두루마리를 어깨에 든 채 하루 종일 뙤약볕 아래에서 뛰어다니고 한참 늦은 점심을 3,000원짜리 동치미 국수로 때워가며 꼬깃꼬깃 손에 쥔 돈. 그 돈의 절반을 벌금으로 낸다니. '나도 어쩔 수 없다'는 경찰의 뒷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본 김씨, 그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허공을 향한 한바탕 욕지거리뿐이었다.

서울시와 서울지방경찰청이 이달부터 '오토바이 보도 주행ㆍ주정차'집중 단속을 실시한 뒤로 김씨처럼 오토바이 배달을 생업으로 삼고 있는 사람들과 단속자 간에 실랑이가 곳곳에서 연출되고 있다.

오토바이를 보도에 세워 둔 김씨의 잘못은 명백했고 경찰의 법 집행도 정당했지만 김씨에게도 속사정은 있었다. 하루 2,000대의 오토바이가 원단을 실어 나르는 동대문종합시장 주변은 합법적으로 오토바이를 대고 짐을 실을 만한 공간이 사실상 없다. 종로구청이 지난 2010년 인도 일부를 조업용 정차 이륜차 주차장으로 만들었지만 관리가 안 돼 장시간 주차된 오토바이로 가득 차 제 구실을 못하고 있으며 이 근방에 추진 중인 대규모 지하 오토바이 전용주차장 설립은 아직 구상단계로 완공까지 수년을 기다려야 한다. 결국 수천명의 '김씨'들은 일당 절반을 날릴 수 있는 경찰 단속을 무릅쓰고 보도나 도로에 오토바이를 세워둔 채 짐을 찾아 시장 곳곳을 뛰어다니는 형편이다.



김씨의 사정은 시와 경찰도 잘 알고 있다. 동대문시장 주변의 생존권과 보행권, 교통흐름과 기초질서 확립 등 여러 가치 간의 충돌을 해결하기 위해 당국이 오랜 궁리를 해온 점도 사실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당국은 가장 쉽고 강력한 카드를 꺼내 들었다. 바로 하루 7만원 벌이 사람들을 향해 겨눈 3만원짜리 딱지다. 불법 주정차 막으라는 소리는 있지만 생존권 따위는 적혀 있지 않은 '법', 그대로였다. 쉽고도 간명한 그 선택, 너무나 공무원답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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