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地球)가 이리저리 굴리고 끌려다니더니 이내 찌그러지기 시작했다. 사실은 지름 3m의 애드벌룬이며, 한국 개념미술의 선구자인 이승택(81)의 15분짜리‘지구행위’라는 행위예술 작업이다. 작가는 일찍이 1980년대 초반에 환경문제의 심각성을 깨닫고 다양한 공간에서 대형 애드벌룬 지구를 띄워왔다. 국내보다 국제무대에서 더 부각된 그는 ‘비물질’, ‘비조각’을 추구하며 돌ㆍ기와ㆍ한지ㆍ머리카락 등 파격적인 매체로 작품을 제작해 당대 미술계에 혁신을 가져왔다.
이승택이 오랜만에 ‘지구행위’를 선보인 곳은 기획전 ‘리멤버 미(Remember Me)’가 열리고 있는 사간동 갤러리현대. 세계적으로 주목 받는 작가 6명을 통해 현대미술계를 주도하는 ‘개념미술(Conceptual Art)’를 고찰한 자리다. 전통적인 명화가 정서적 위안을 준다면 개념미술은 생각의 전환과 함께 세상을 다시 보게 한다. 이번 전시는 42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갤러리현대가 사간동 본관ㆍ신관ㆍ16번지ㆍ두가헌 갤러리 등 강북 전관에서 하나의 기획전을 선보이는 첫 시도라 더욱 눈길을 끈다.
영국의 권위있는 미술월간지 아트리뷰가 지난해 ‘세계적으로 영향력 있는 예술계 인사 100인’ 중 1위로 선정한 중국의 설치미술가 아이 웨이웨이(55)의 최근작 ‘258 Fake’를 이번 전시에서 만날 수 있다. 작가가 2003년부터 직접 촬영해 블로그에 올린 7,682장의 사진을 담은 작업으로 일상에서의 예술관ㆍ정치적 신념을 담고 있다. 베이징영화학교, 뉴욕 파슨스디자인스쿨 등에서 수학한 아이 웨이웨이는 2008년 베이징올림픽 주경기장을 디자인 했다. 작품을 통해 중국 공산당을 신랄하게 비판한 탓에 그는 지난해 4월 조세포탈 혐의로 공안당국에 체포, 구금됐었다. 이에 전세계 예술인들과 인권단체가 그의 석방을 요구한 끝에 81일 만에 풀려났다. 지난해 광주디자인비엔날레 공동감독을 역임하는 등 한국과의 인연도 깊다.
돌 같은 일상적인 사물을 전시장에 갖다 두고, 일종의 선언문처럼 보이는 텍스트(text)를 함께 배치하는 정서영(48)의 작품은 사람들이 눈으로 보는 조각보다 직접적으로 말해주는 언어에 더 민감하다는 점을 교묘하게 찌른다. ‘전화를 걸어라. 가능하면 수염난 김씨에게 와달라고 부탁해라.…(하략)’로 전개되는 작품은 진지한 유머를 품고 있다.
덴마크 출신 시몬 드브뢰 묄러의 작품도 씁쓸한 웃음을 자아낸다. 영상작품 ‘라우드 스피커(Loud Speaker)’는 소리 내는 것이 기능인 스피커는 말이 없고, 현대사회를 상징하는 정장차림의 여성은 듣는 역할 대신 되려 고래고래 소리치는 상황을 보여준다.
이탈리아의 루카 부볼리(49)는 2007년 베니스비엔날레에서 대형 설치작품을 선보인 이래로 모마(MoMA)의 작품 소장, 2010년 도이치구겐하임 개인전 등으로 명성을 쌓은 작가다. 이번 전시에는 넘어선다는 뜻의 메타(Meta-)와 기술을 찬양하던 20세기 예술사조 미래주의(Futurism)를 합친 ‘메타-퓨처리즘’라는 개념을 선보였다. 또한 중국작가 리우 딩(36)의 신작 ‘증거’는 중국이 서양미술을 받아들이기 시작한 1980년대 중반의 미술품들을 제시함으로써 무분별한 서양식 교육과 문물 유입의 여파를 표현했다. 전시는 14일까지 계속된다. (02)2287-3500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