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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오는 들판을 가로질러 걸어가는 엄마. 그녀의 손엔 골프채가 들려있고, 골프채 머리에는 비에 맞지 않도록 집에서 가져온 비닐장갑이 씌워져 있다. 아들이 무죄임을 증명할 수 있을 거란 생각에 엄마의 얼굴은 자못 결연하다. 김혜자는 과연 김혜자였다. 봉준호 감독이 10년 전 그녀를 처음 보고 ‘마더’를 구상했다고 밝혔을 만큼 ‘마더’는 오롯이 김혜자가 빛을 발하는 영화다. 영화 속 ‘엄마’김혜자는 그 동안 그가 표현했던 인자하기만 한 역할은 아니다. 자식을 사랑하면서도 자식 때문에 힘들어 하는 복잡한 심경을 가진 인물이다. “너는 난데… 세상 천지 너하고 나하고…”라고 울부 짖는 엄마의 모습에서 자식 속에 자신을 투영하는 엄마가 그대로 드러난다. 그런 아들이 살인사건에 휘말렸으니, 엄마 역시 그 살인사건의 한 복판에 서있는 것은 당연하다. 자식의 삶과 자신을 일치시키는 엄마, 영화 ‘마더’는 여기서 시작하고 여기서 끝이 난다. ‘봉테일’이라 불리는 봉준호 감독의 디테일은 마더에서 절정을 이룬다. 등장인물은 모두 시나리오 작업 때부터 이미 캐스팅이 결정돼 있었고 이유없이 등장하는 소품은 하나도 없다. 특유의 유머와 재치는 살아있지만 영화 ‘괴물’(2006)때 남아있던 약간의 장난기는 ‘마더’에선 보이지 않는다. 어쩌면 가장 평범할 수 있는 소재 ‘엄마’로 가장 집약적이고 군더더기 없이 영화다운 영화를 만든 것이다. 살인사건을 다룬 만큼 영화의 장르는 스릴러라 할 수 있지만 여기에 기막힌 반전이 있는 건 아니다. 하지만 관객들의 가슴을 조여 오는 이유가 있다면, 그건 스릴러의 긴박감 때문이 아니라 살인사건의 한복판에 서있는 엄마의 가슴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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