힌국은 지난달 월간 수출이 사상 처음으로 500억달러 수준을 넘었다. 선진국들의 경기가 살아나면서 우리 수출이 늘어난 결과다. 경상수지도 19개월 연속 흑자를 기록하고 있다. 이에 따라 한국의 외환보유액은 10월 말 현재 3,432억달러로 늘었다. 이제 외환보유액은 국내총생산(GDP)의 3분의1에 달하며 한국은 세계 7위의 외환보유국이다. 대부분 신흥국들이 최근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경상수지 적자와 경기침체로 어려움을 겪는 가운데 한국이 유독 눈부신 성과를 보이고 있다는 점에서 더욱 의미가 있다. 이로써 한국은 일단 글로벌 금융위기를 벗어나서 경제가 회복단계에 들어선 것 같다. 그러나 우리는 이 같은 성과에 무작정 자만하고 방심할 수는 없다. 오히려 이 같은 '위장된 축복'이 선진국과 환율전쟁을 촉발할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일부 경제전문가들은 과도한 외환보유액을 쌓는 것이 몇 가지 위험이 있다고 주장한다. 첫째는 중앙은행이 미국 재무부 채권 등 수익률이 낮은 안전자산 위주로 외환보유액을 축적하는 것은 그만큼 기회비용이 크다는 것이다. 가령 외환보유액 일부를 수익성이 높은 투자에 활용하면 그만큼 국민소득이 증가한다는 주장이다. 둘째는 과도한 외환보유액은 환율변동에 따라 자산가치 변동을 증대시킨다는 것이다. 또한 외환보유액이 늘어나면서 국내 통화량이 늘면 인플레이션 우려가 있기 때문에 통화관리 비용도 적지 않다. 그러나 보다 큰 문제는 외환보유액을 늘리기 위해서 정부나 중앙은행이 외환시장에 개입할 경우 환율전쟁을 촉발할 위험이 있다. 국제무역 질서에서 대외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외환시장에 개입해서 자국통화 가치를 인위적으로 떨어트리는 것은 반칙이다. 최근 미국 재무부는 '반기 통화보고서'를 통해 한국 정부에 외환시장 개입을 자제하라고 경고했다. 이 보고서는 교역상대국이 외환시장 개입을 통해 미국에 대한 수출경쟁력을 인위적으로 강화하지 않도록 경고할 목적으로 작성하고 있다.
미 재무부가 한국의 외환정책에 대해 비판한 것은 한두 번이 아니다. 재무부는 외환시장 개입을 시장이 매우 불안정한 예외적인 경우에만 허용돼야 한다는 것이다. 원화의 가치는 대규모로 늘어나는 경상수지 흑자 등 한국경제의 펀더멘털을 반영해야 한다. 그러나 한국의 정책당국은 원화가치 상승이 수출을 저해할 것을 우려한다. 원화의 대미달러 환율은 지난 7월 이후 6%가량 절상했다. 특히 최근 해외에서 들어오는 자본이 아시아 신흥국들 중에서 한국을 선호하는 바람에 환율이 더욱 강세를 띠고 있다. 한국의 정책당국은 미국 연준(聯準)의 양적완화 축소 등으로 글로벌 유동성이 줄어들 경우 외국자본이 갑자기 해외로 대규모 유출될까봐 긴장하고 있다. 한국은 1997년 아시아 금융위기 때 극심한 외환부족을 겪었으며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도 또다시 유동성 곤란을 당한 경험이 있다.
반면 미국ㆍ일본 등 선진국들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경기침체에서 벗어나기 위해 양적완화를 실시해왔다. 양적완화는 돈을 찍어내는 통화팽창 정책이며 따라서 자국통화를 평가절하하는 정책이다. 돈을 찍어서 국내 금리를 낮추는 것이다. 또한 저금리로 늘어난 유동성은 높은 수익률을 찾아서 해외로 나가면서 환율을 평가절하하고 수출경쟁력을 강화한다. 결과적으로 신흥국들은 미국 달러화 및 일본 엔화의 가치하락 때문에 무역수지 악화와 경기침체로 고전하고 있다. 이런 이유 때문에 아시아 신흥국들은 미국과 일본의 양적완화를 소리 높여 비판한다. 미국은 신흥국들의 시장개입은 비난하면서 양적완화는 국제무역 질서에 위배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양적완화나 외환시장개입은 모두 자국통화가치를 낮추고 국내 경기침체를 교역상대국에 떠넘기는 인근궁핍화(隣近窮乏化) 정책이다. 이렇게 볼 때 국제무역에서 보호무역주의를 경계하면서도 환율전쟁은 이미 시작된 것 같다. 한국도 선진국의 양적완화 및 축소에 적극 대응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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