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사회에서 국민을 제일 화나게 하는 황당한 주장이 있다. 그것은 '북한을 자극하지 말라'는 것이다. 특히 북한의 각종 대남비방 및 도발행위들에 대해서는 일언반구의 비판도 하지 않고 그저 남측을 향해서만 북한을 자극하지 말라는 주장을 할 경우 더욱더 황당함을 느낀다.
잔혹한 북한 독재정권이 조속히 종식되기를 바라는 마음에 탈북민들과 애국시민들이 북한 체제를 비판하면서 남한과 북한을 비교하는 대북전단을 살포하고 있다. 이에 대해 "북한을 자극하는 행위니 삼가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는데 이야말로 황당한 주장의 대표 사례라고 할 수 있다. '북한을 자극하는 행위를 하지 말라'는 주장이 황당한 이유는 다음과 같다.
우선 '자극'이라는 용어는 한쪽은 점잖게 조용히 있는데 다른 상대방이 대상에게 시비를 걸고 흥분시키는 경우를 일컫는다. 하지만 북한은 시도 때도 없이 갖은 욕설과 험담을 일삼으며 남한을 비난하고 남한 지도자를 비방하고 남쪽 국민들을 해치고 있다. 또 자기 국민들을 아사·동사시키고 살해하는 것은 물론 앞으로 동족에게 엄청난 재앙이 될 수 있는 대량살상무기들을 부단히 개발하고 있다. 북한 정권은 조용히 가만히 있는 상대가 아니고 우리에게 해를 끼치고 엄청나게 자극하는 실체나 다름이 없다.
이는 동서독의 사례와 극명하게 대비된다. 분단돼 있던 동서독에서 서독은 추호도 이런 점에서 양보 없이 더 적극적으로 되받아쳤다. 북한은 쉼 없이 대남 심리전을 전개하는데 남한이 무방비 상태로 가만히 있으면 북한에 대한민국의 무능을 보여주는 행위가 된다. '북한을 자극하지 말라'는 이야기는 북한이 싫어하는 행동은 하지 말라는 이야기가 되는데 이를 결코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 적(敵)은 애정을 담아 모시는 상관이나 사랑하는 애인이 아니다. 북한 정권이 남한이 꺼리는 행동을 하지 않으면 우리도 자극적인 행동을 하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지금까지의 북한 행태는 남한이 북한에서 싫어하는 행동을 하지 않는다고 해서 질적인 변화를 보여준 것이 아니었다. '너는 해서는 안 되고 나는 해도 괜찮다'는 자세를 고집하며 오만방자하게 남한을 대하는 실체가 바로 북한 정권이다. 이런 북한을 '자극하지 말라' 운운하는 것은 북한의 실체를 정확히 모르고 하는 주장이다.
이러한 억지 주장은 북한이 어떤 비합리적 행태를 자행하더라도 받아들이며 북한이 하자는 대로 맞춰주자는 것이다.
이는 박근혜 정부가 주장하는 '남북관계의 비정상의 정상화' 원칙에도 위배된다. 북한이 남한에 수없이 비합리적인 행태를 자행함에도 대응하지 않으면 북한은 점점 더 기고만장해져 남한을 더욱 비합리적으로 상대하려 할 것이다. 북한의 비합리적인 행태를 좋은 것이 좋다는 식으로 계속 대하면 비합리성이 커져 남한에 더 큰 재앙을 초래할 수도 있다.
마지막으로 '북한을 자극하지 말라'는 논리는 주로 남한이 북한에 '대화구걸' '평화구걸'을 하면서 나온다. 북한을 자극해 혹시 대화를 깨지나 않을까, 교류협력을 흔들지는 않을까 하는 노심초사하는 마음에서 나오게 된다.
이런 저자세로 대화나 평화를 구걸해본들 그것은 진정한 대화도 진정한 평화도 아니다.
북한에 공연히 시비를 걸면서 자극할 필요는 없다. 그러나 북한이 우리를 해치고 자극하는 하는 경우에도 '북한을 자극하지 않는다'는 잘못된 명분으로 적극적인 대응을 하지 않는다면 심리전 패배로 이어지게 된다. 이는 경우에 따라 엄청난 재앙을 초래하게 된다.
북한의 잘못된 악행에 상응하는 행위 혹은 그 이상의 되갚음을 하는 것은 자극이 아니라 정당방위요 기본적인 국가수호 행위다. '북한을 자극하지 말라'는 주장은 북한을 두려워하는 심리적 패배와 다름이 없다. 적을 적으로 대하지 않으면 엄청난 후환이 따르는 것이 역사적 진리다.
송대성 세종연구소장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