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대한민국 국정이 '증세 없는 복지' 블랙홀에 빠져 있다. 당정청 간 불협화음이 터져 나오고 국정추진동력이 급속히 떨어지고 있다. 우리나라 곳곳에서 석유가 쏟아져 나오지 않는 한 증세는 불가피하고 당연한 것이다.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는 국회 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 "증세 없는 복지는 국민을 속이는 것"이라고 했다. 정확한 표현이다. 박근혜 정부는 '증세 없는 복지'를 내세우면서 사실상 증세를 계속해왔다. 소득세 최고세율 과표 구간을 3억원에서 1억5,000만원으로 인하하고 대기업의 최저한세율을 인상했으며 근로소득자의 세액계산 방법을 소득공제에서 세액공제로 전환하고 담배소비세를 인상한 것 등이 대표적이다.
실현 불가능한 정책 대신 공론화 필요
겉으로는 증세 없이 복지를 늘려주겠다면서 실제로는 세금을 올려 중산서민층의 호주머니를 터는 표리부동한 복지 공약이 국민의 화를 불렀다. 특히 담뱃세와 근로소득세 등 서민과 근로자 위주로 세 부담을 늘린 것이 치명적 정책 실패였다. 정부는 "세율을 올리지 않았고 세목을 신설하지 않았기 때문에 증세가 아니다"라는 국민 정서와 동떨어진 말을 되풀이해왔다. 전형적인 소통 부족이다. 세 부담이 늘어나면 국민은 증세로 받아들인다. 이것은 상식에 속한다.
박근혜 대통령이 국민과 약속한 복지 규모는 5년간 134조8,000억원이다. 매년 27조원의 재원이 추가로 필요하다. 그런데 박근혜 정부 들어 복지예산은 23조원 늘었는데 저성장으로 세 수입은 오히려 22조원 줄어들었다. 세 수입은 줄고 세출예산은 늘어나는 나라 살림 구조에서 거꾸로 세 수입을 늘리고 세출을 줄여 매년 추가로 복지재원 27조원을 마련하겠다는 박근혜 정부의 공약가계부는 원천적으로 실현 불가능하다. 결국 '증세 없는 복지'를 하려면 미래 세대가 부담할 국가부채를 늘려야 한다. 이는 빚을 내 잔치를 벌이는 것이고 나라를 아르헨티나와 그리스 같은 재정위기 국가로 끌고 가겠다는 것이나 다름없다.
박근혜 정부는 하루빨리 국정의 블랙홀, '증세 없는 복지'에서 빠져나와 '복지'와 '증세'를 공론화해야 한다. 이래야 국정이 정상적인 궤도로 진입할 수 있고 추동력을 얻을 수 있다.
먼저 '복지지출의 구조조정'이다. 정치권은 지난 총선과 대선에서 표를 얻기 위해 재원 대책 없는 무상복지 공약을 쏟아냈다. 여야는 자초한 원죄에 대해 국민 앞에 솔직히 사과하고 복지재원을 꼭 필요한 곳에 쓰는 선별적 복지로의 전환을 선언해야 한다. 예컨대 전업주부가 어린이집에 아이를 맡겨 워킹맘이 고통받는 일, 학교건물 보수예산을 줄여 부잣집 아이에게까지 급식을 제공하는 것을 비롯한 복지 체감도를 낮추고 국민의 혈세를 낭비하는 보편적 복지는 반드시 시정돼야 한다.
선별적 복지 전환하고 공감 얻어야
복지 구조조정 후에도 부족한 재원이 있다면 국민 앞에 솔직히 설명하고 국민이 공감하는 방법으로 증세에 나서야 한다. 증세의 원칙과 기본은 세율 인상보다 세원 확대, 세 부담의 공평성 확보, 경제의 비효율성 최소화 등 세 가지다. 정부가 원칙과 기본을 지키고 정치권과 국민을 상대로 설득과 소통을 강화하면서 필요한 최소한의 증세에 나선다면 추락한 대통령 지지도도 오를 것이다. 복지와 증세에 대한 대타협위원회를 구성해 국민적 합의를 이끌어내는 것도 좋은 해결 방안이라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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