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 대통령이 단순한 유감을 넘어 사과를 표명한 것은 기초연금을 못 받는 노년층의 불만을 감안할 때 당연하다. "세계경제 침체와 맞물려 유례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세수부족이 큰 상황이고 재정건전성의 고삐를 쥐어야" 했다는 불가피성 역시 납득된다. 국무회의라는 장소를 빌렸지만 내용은 국민을 향한 호소라는 점에서 형식도 무리는 없다.
하지만 박 대통령의 '죄송한 마음'은 딱 여기까지다. "국민연금 가입기간이 길수록 손해는 아니다"라고 했지만 상대적으로 기초연금을 적게 받는 중장년층 가입자는 수긍하기 힘들다. "공약포기는 아니다"라는 주장도 받아들이기 어렵다. 기초연금 외에 4대 중증질환, 반값등록금 등 국민과의 약속이 줄줄이 축소돼 후퇴임이 분명한데 애써 이를 회피하려는 모습이다.
현재 논란은 단순히 기초연금만의 문제가 아니다. 핵심은 우리 경제와 재정여건을 감안하지 않은 공약이행이 과연 가능하겠냐는 것이다. 박 대통령의 해명은 이 점에서 초점을 피해갔다. 단지 복지해결을 위한 증세 논의만 우회적으로 시사할 뿐이다. 그러나 이 역시 경제와 재정 전망이 밝지 않은 상황에서 잘못 건드렸다간 자칫 조세저항을 초래할 수도 있다.
결국 국민 부담을 줄이고 나라 곳간을 거덜내지 않으려면 대통령이 생각을 바꿔야 한다. 이미 퍼주기 복지의 한계가 곳곳에서 드러났고 공약수정에 대한 필요성도 폭넓게 형성돼 있는 상황이다. "복지제도는 국민적 합의가 전제된다면 더 강화할 필요가 있다"는 대통령의 언급은 이제 "국민이 동의한다면 공약을 바꿀 수도 있다"로 고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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