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차 세계대전 후 독일과 일본의 사과 수준과 그 자세가 전혀 다른 것은 전후 정권을 장악한 세력이 독일은 저항세력이었지만 일본은 침략세력이 그대로 정권을 장악했기 때문입니다. 이에 따라 일본이 군사대국화정책을 계속 펴는 한 한일관계도 일시적인 봉합은 있을 수 있지만 근본적인 관계의 호전은 어려울 겁니다."
김현종(사진) 고려대 사범대학 역사교육과 명예교수는 지난 2일 오후 서울역사박물관에서 '현 일본 주도세력의 한국에 대한 인식'을 주제로 가진 제23차 우당역사문화강좌에 강사로 참여해 이같이 강조했다.
그는 전후 일본에 침략세력이 집권한 것은 세계적으로 급속히 확산되는 공산세력 막기 위해 미국이 용인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특히 전후 총리를 지낸 인물들이 전범을 비롯한 침략세력이었고 그들의 후손들이 한두 세대 뒤에 여전히 총리를 맡아오고 있다고 강조했다.
그에 따르면 구체적으로 아베 신조 총리의 외조부 기시 노부스케는 만주국 대신을 거쳐 전후 총리를 두 번 지낸 소위 A급 전범이었고 외종조부 사토 에이사쿠도 전후 총리를 세 번 했던 인물이다. 현 부수상이고 전 수상인 아소 다로의 외조부 요시다 시게루는 총리를 다섯 번 했고 장인인 스즈키 젠코도 총리를 지냈다.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총리의 조부는 중의원 의장을 지냈으며 아버지는 체신부대신을 지냈다. 민주당의 하토야마 유키오 수상도 그 조부 하도야마 이치로가 총리를 세 번 했고 1992년 신당을 창당해 자민당 장기 집권을 무너트린 호소가와 모리히로 전 총리의 외조부 고노에 후미마로도 2차 세계대전 직전까지 총리를 세 번이나 지냈다는 것이다.
현재 일본 집권세력이 그들 입장에서 커다란 제국을 건설했던 자랑스러운 아버지나 할아버지를 전범이라며 사과할 턱이 없고 주변 국가에 대한 침략이나 만행을 사과하는 내용을 역사교과서에 싣는 것은 자신들의 할아버지를 부정하고 자기 자신을 부정하는 것이라는 얘기다.
김 교수는 또 한국도 아시아의 반공화를 저지하려는 미국의 중계로 1965년 한일수교를 하고 일본의 자본과 기술을 들여와 근대화에는 성공했지만 결과적으로 전범들에게 면죄부를 주게 됐다고 비판했다.
그는 이에 따라 한일관계도 일본의 군사대국화정책이 계속되는 한 일시적인 봉합은 있을 수 있지만 근본적인 관계의 호전은 어렵다고 내다봤다.
그는 그러나 "지역·인종·경제·종교·이념 등의 문제를 극복하고 보편가치를 공유하는 공동체를 형성해가고 있는 유럽연합(EU)이 세계를 리드하고 있다"며 "한중일이 중심이 된 동북아도 시차는 있지만 보편가치를 공유하는 지역 협력체 내지 하나의 공동체를 향해 나가지 않을 수 없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는 또 "동북아가 하나의 공동체로 나가기 위해서는 하루빨리 자국 중심의 내셔널리즘을 극복하고 보편적인 가치를 공유하는 방향으로 나가야 한다"며 "내셔널리즘을 극복하고 보편적인 가치를 주도하는 세력이야말로 미래 동아시아 공동체의 주역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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