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3대 유종에 속하는 서부텍사스산중질유(WTI)와 브렌트유의 가격 차이가 10일(현지시간) 이집트 사태의 여파로 장중 16달러 이상까지 벌어지며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이러한 큰 가격차이는 국제 원유시장에서 벤치마크(기준원유)로 통하는 WTI가 실제 유가흐름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는 방증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WTI와 브렌트의 가격 차이는 3주만에 두 배로 확대됐다. 두 원유가격의 차이가 갈수록 확대되는 것은 이집트 반정부 시위의 장기화로 유럽과 아프리카에서 주로 거래되는 북해산 브렌트유가 가파르게 오르고 있지만 미국산인 WTI는 이에 민감하게 반응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파이낸셜타임스(FT)가 이날 보도했다. 반정부 시위가 시작된 지난 1월 25일부터 지금까지 브렌트유(3월물은) 가격은 배럴당 95.25달러에서 100.87달러로 5.9% 올랐다. 반면 WTI 가격은 이 기간 배럴당 86.19달러에서 86.73달러로 거의 변화가 없었다. WTI 가격은 10일 현재 중동 두바이유에 비해서도 11달러가량 낮다. WTI는 뉴욕상품거래소(NYMEX)에서 원유계약시 기준이 되는 유종으로 시장 규모가 가장 커서 국제시장에서 원유의 실질 가격을 결정하고 있다. 반면 WTI는 미국의 원유 재고량 등에 크게 영향을 받는 탓에 이집트 사태 등 다양한 변수들에 대한 민감도는 덜 한 편이다. 실제로 미국 최대 원유 저장지역(오클라호마주 쿠싱)에서의 재고량이 늘어나면서 WTI 가격은 최근 브렌트유와 두바이유의 급등세와는 달리 제자리 걸음을 지키고 있다. 베이크 커머디티사의 크리스토퍼 벨류 선임중개인은 “OPEC의 증산이나 겨울철 추위 등 실제 변수를 브렌트유가 더 적절히 반영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NYMEX의 모기업인 CME 그룹은 WTI와 브렌트유의 가격 차이는 순환적인 현상일 뿐이라고 반박했다. 하지만 미 에너지정보국(IEA)은 “쿠싱에서의 엄청난 재고량을 줄일 방법이 거의 없어 (WTI와 브렌트유의) 가격 격차는 앞으로 수개월 심지어 수년간 지속될 수 있다”고 내다봤다. 또한 WTI는 가격결정에 투기적 요소가 깊이 개입돼 있어 기준원유로는 부적절하다는 비판도 받아왔다. 세계 최대 산유국인 사우디아라비아는 지난 2009년 유가 산정지표로 영국 업체가 개발한 아거스고유황원유지수(ASCI)를 택하면서 WTI를 제외시킨다고 발표한 바 있다. 위키리크스가 입수한 미 대사관의 문건에 따르면 당시 사우디 국왕과 석유장관은 “WTI 시장은 마치 도박시장”이라고 표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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