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3년 9월1일 미국 뉴욕에서 출발해 서울로 향하던 대한항공 007편이 소련 영공을 침범했다가 사할린 부근 상공에서 소련 전투기의 미사일에 격추됐고 항공기에 타고 있던 승객과 승무원 269명 전원이 사망했다. 소련은 민간여객기인 줄 몰랐다고 주장했으나 한국과 미국을 비롯한 서방 국가의 큰 반발을 불러일으켰다. 당시 세계 정세는 미국과 소련 간의 냉전 대결구도가 막바지로 치닫던 상황이었다. 양국은 첩보활동을 위해 상대국의 영공을 침범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에 소련이 대한항공기를 정찰기로 오인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견해다.
이번 말레이시아 여객기 피격 사건도 우크라이나의 정부군과 반군 간 교전이 치열하게 벌어지는 지역의 상공에서 일어났고 내전의 긴장감 속에서 민간항공기에 타고 있던 수백명의 목숨이 희생된 점은 냉전 속 애꿎은 피해를 당한 31년 전 대한항공기 피격 사건과 닮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이보다 앞선 1978년 4월20일에는 프랑스 파리에서 이륙해 김포국제공항으로 운항하던 대한항공 902편이 항법장치 이상으로 소련 영공을 침범했고 소련 전투기의 미사일에 날개를 맞은 대한항공 여객기는 러시아 서북부 무르만스크주의 한 얼어붙은 호수에 불시착하면서 탑승객 109명 중 2명이 사망했다.
이 밖에 1973년 2월21일 리비아 트리폴리에서 이집트 카이로로 향하던 리비아 항공 소속 보잉 727 여객기가 이스라엘 전투기에 격추돼 당시 이스라엘 영토였던 시나이반도 사막에 추락, 탑승자 112명 중 4명만이 살아남았다. 1988년 7월3일에는 이란항공 655편이 미국 해군 함정 빈센스호의 미사일 공격을 받아 탑승객 290명이 전원 사망했으며 2001년 10월4일에는 러시아로 향하던 러시아 TU-154 여객기가 우크라이나군의 미사일에 맞아 탑승자 78명 전원이 사망했다. 이에 따라 이번 말레이시아 여객기 피격 사건은 7번째 민항기 격추 사건이다. 민간항공기가 격추되면 법적 책임과 배상 등을 둘러싼 국제적 파장이 크고 원인규명과 책임소재를 둘러싼 논란이 장기간 계속된다는 특징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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