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 간 대립으로 헌법재판관 공백 사태가 8개월째 이어지자 헌법재판소가 국회에 공개서한을 보내며 사태해결을 촉구했다.
헌재가 국회에 공개서한을 보내 의견을 표명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강국 헌법재판소장은 22일 국회의장 앞으로 보낸 공식서한에서 "헌재 재판관 1인의 공석 상태가 이미 7개월을 넘겼다"며 "헌재는 재판관 공석이라는 위헌적 상태가 장기화되고 있는 데 대해 심각하게 우려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 소장은 "우리 헌법에는 헌재가 9인의 재판관으로 구성되며 그 중 3인은 국회에서 선출하도록 규정하고 있다"며 "국회가 재판관 3인을 선출하는 것은 국회의 헌법상 권한인 동시에 의무이며 국민에 대한 책무이기도 하다"고 밝혔다. 이어 "헌법상 법률 위헌 결정이나 탄핵, 정당해산 결정, 헌법소원 인용 결정 등에서 재판관 6인 이상의 찬성이 있어야 한다"며 "지금 사태는 단순히 1석이 공석이라는 의미를 넘어 심판결과가 왜곡될 수도 있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헌법재판관은 헌법 제111조에 따라 9명으로 구성된다. 재판관 정원 9명 중 3명은 국회가 선출하며 나머지 6명은 대통령과 대법원이 각각 3명씩 추천한다. 헌법재판소가 8명의 헌법재판관으로 파행 운영되는 상황은 조대현 전 헌법재판관이 지난해 7월8일 퇴임한 후 8개월째 이어지고 있다.
민주통합당이 야당 몫으로 조용환 변호사를 후보자로 추천해 지난 9일 국회 본회의에 선출안을 상정했지만 새누리당은 조 후보자가 인사청문회에서 천안함 사태에 대해 "직접 보지 않았기 때문에 (북한 소행이라고) 확신이라는 표현을 쓰기 곤란하다"고 한 발언 등을 문제 삼아 거부권을 행사했다.
국회가 조 후보자의 선출안을 부결한 만큼 새로운 후보자가 정해질 경우 인사청문회 절차부터 다시 밟아야 하기 때문에 새로운 헌법재판관 선출절차는 사실상 19대 국회로 넘어갈 가능성이 크다. 18대 국회 임기는 오는 5월까지지만 여야는 당장 4월 총선체제에 돌입하기 때문에 헌법재판관 선출에 눈길을 줄 여유가 크지 않다. 헌법재판소가 이례적으로 국회에 서한까지 보내며 사태 해결을 촉구한 것은 헌법재판관 공백 사태가 수개월간 더 이어질 수 있다는 위기감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헌재는 그동안 국회의 자율적 의사 결정을 존중해 헌법재판관 공석 사태에 관한 입장표명을 자제해왔지만 9일 재판관 선출안이 부결된 후에는 분주한 움직임을 보였다. 헌재 안팎의 의견을 광범위하게 수렴하고 재판관끼리 모여 간담회 형식의 회의도 연 것으로 전해졌다.
헌재는 재판관 7인 이상이면 위헌법률ㆍ권한쟁의ㆍ헌법소원 사건에서 선고를 할 수 있지만 현행 8인 재판관 체제는 9인의 재판관에 따른 합의제라는 헌법 정신에 어긋나 부적절하다는 것이 헌재의 입장이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선거운동 금지조항에 대한 지난해 헌재의 한정위헌 선고는 8인 재판부에 따라 이뤄졌다.
선출안이 부결되자 한명숙 민주당 대표는 19대 국회에서 조용환 헌법재판관을 재추천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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