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 전 회장 일가 계열사의 금융거래 내역을 추적하고 있는 금융당국 관계자는 "도료 제조 판매 업체인 ㈜아해(전신 세모케미컬)가 모 시중은행에서 1.5%의 금리로 시설자금을 빌리는 과정에서 정책자금을 단 하루 만에 빼돌린 사실을 확인했다"고 21일 밝혔다. 이 자금은 에너지관리공단이 운용하는 에너지이용합리화자금으로 에너지 시설에 투자하는 데 드는 재료비와 공사비를 최대 7년까지 장기 저리로 대출해주는 것이다. 대출이 승인되면 용도 외 전용을 막기 위해 은행창구를 통해 해당 시공업체에 직접 송금된다.
아해는 은행이 시공업체에 대출금을 송금한 당일 대출금의 40%인 8,000만원을 아해 대표이사 명의의 계좌와 아해 계좌로 절반씩 나눠 되돌려받은 것으로 드러났다. 금융당국은 정책자금을 빼돌리는 과정에서 아해가 시공업체 등에 리베이트를 줬을 것으로 추정하고 경위를 파악하고 있다.
아해는 이 밖에도 산업은행을 비롯한 시중은행에서 시설 및 기술자금 용도로 10억7,600만원을 1.5~3%의 저리로 대출 받았으며 자동차 부품업체 계열사인 온지구도 에너지기금합리화자금을 통해 1.5% 금리로 1억9,400만원을 빌렸다. 이에 따라 금융당국은 유병언 계열사들이 아해와 같은 방식으로 정책자금 일부를 비자금으로 빼돌리거나 다른 계열사 지원금으로 유용했을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있다. 아해는 청해진 해운의 지분을 갖고 있으며 유 전 회장의 두 아들이 소유한 아이원홀딩스의 지배를 받고 있다.
유 전 회장 일가 계열사가 이처럼 쉽게 저리의 정책자금을 빌릴 수 있는 배경은 공공기관의 허술한 자금지원 심사와 은행의 부실 관리라는 지적이다. 에너지이용합리화자금의 경우 에너지관리공단이 일정한 평가를 거쳐 은행에 대출 추천서를 발급해준다. 은행은 정책적 지원 사업이라는 이유로 공공기관 추천서가 있으면 엄격한 심사 없이 대출을 해주는 실정이다.
금융당국은 아해가 유용한 자금을 조기 회수하도록 해당 은행에 지시하는 한편 다른 계열사 정책자금의 사용 내역을 추적하고 있다. 또 세모 신협 계좌에서 은행 계좌를 통해 유 전 회장 일가 계좌로 간 66억원의 자금 출처를 따져 유 전 회장의 비자금 통로인지 파악하고 있다. 세모 신협은 과거 세모 출신 직원들이 세운 직장 신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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