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명보(43) 감독이 지난 2009년 20세 이하(U-20) 이집트 월드컵에서 16강 진출 뒤 남긴 말이다. 그의 말대로 당시 대표팀은 16강을 넘어 8강 진출의 신화를 썼고 2010 광저우 아시안게임 동메달을 거쳐 런던 올림픽 동메달이라는 원대한 꿈을 현실로 만들었다.
3년 전 명장 반열에 올랐다는 칭찬에 성장을 강조했던 홍 감독. 그는 런던에서 마침내 명장 타이틀에 대한 쑥스러움도 떨쳐냈다. 한국 축구의 황금기를 열어젖힌 홍 감독의 '진심 리더십'을 돌아봤다.
◇여론에 휘둘리지 않는 대쪽 리더십=일본과의 동메달 결정전(2대0 승)에서 선제 결승골을 넣은 박주영(아스널)은 대회 전만 하더라도 골칫거리였다. 병역 회피 논란에 한 달간 잠적하며 속을 썩였다. 이 사이 비난 여론은 극한으로 치달았다. 하지만 홍 감독은 그런 박주영을 껴안았다. 6월 기자회견에 동석해 "박주영이 군대를 안 간다고 하면 내가 대신 가겠다"고까지 말하며 와일드카드(23세 이상 선수)로 발탁했다. 광저우 아시안게임 때 동생들의 정신적 지주로 팀을 보듬었던 박주영을 끝까지 믿었던 것. 박주영은 조별리그 스위스전 선제골과 동메달을 결정 짓는 환상적인 골로 믿음에 보답했다.
◇나는 망해도 선수는 흥해야="내가 실패하더라도 우리 선수들은 성공하면 좋겠다." 홍 감독이 가장 많이 해온 말이다. 패배에 대한 책임은 오롯이 자신이 지겠으니 걱정 말고 약속된 플레이를 펼치라는 얘기다. 그는 올림픽 최종예선에서는 "내 가슴에는 칼이 있다. 다른 사람을 해치는 칼이 아니라 너희가 다칠 것 같으면 나 스스로를 죽이는 칼"이라며 "너희는 팀을 위해서만 뛰어라"고 했다. 선수들은 진심이 느껴지는 이 말에 가장 울컥했다고 한다.
홍 감독은 약속대로 안 된 경기에 대해서는 "개판"이라는 말까지 섞으며 신랄하게 꾸짖는다. 하지만 연습대로만 이행했다면 실수에는 한없이 너그러웠다. "선수들과 심리적인 싸움을 한다"는 홍 감독은 지나가는 말 한마디조차 두세 수 앞을 내다보고 건넨다.
◇놀 땐 확실히 논다=2009 이집트 월드컵 8강에서 가나에 2대3으로 진 선수들은 고개를 숙이지 않았다. 홍 감독은 4강 좌절보다 8강 진출의 의미를 강조했고 선수들은 홍 감독을 번쩍 들어 홍해에 빠뜨리는 화끈한 뒤풀이로 앞날을 기약했다. 당시 뒤풀이 자리에 있었던 이들이 바로 올림픽 동메달의 주역인 구자철(아우크스부르크), 김보경(카디프시티), 윤석영(전남), 김영권(광저우 헝다), 오재석(강원), 이범영(부산)이다. 홍감독은 U-20 감독에 이어 올림픽 감독에 임명되면서 사실상 이 팀을 계속 이끌어왔다. 이들을 포함한 18인 영광의 얼굴들은 일본을 깬 뒤 카디프 밀레니엄 스타디움의 라커룸을 난장판으로 만들었다. 홍 감독도 물벼락을 맞아 양복이 엉망이 됐다. 숙소로 돌아와서는 한 방에 모여 기념사진을 찍었다. 웃음이 적은 홍 감독이었지만 이날만은 입을 다물 줄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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