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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성당은 있지만 사제는 없는 곳… 제3자 눈에 비친 북한의 속살

■ 영국 외교관, 평양에서 보낸 900일 (존 에버라드 지음, 책과함께 펴냄)

北에 머물며 북한 사람·삶 관찰

"南에 대해 매료·시기·선망 뒤섞여

고립무원 北 현상태로 놔둬선 안돼"

평양 중심지 전경은 음산할 정도로 정제돼 있다. 곳곳에 노후한 건물들도 눈에 띄지만 수리되지 않은 채 그대로 방치돼 있다. /사진제공=책과함께


종교 탄압이 극심한 북한에는 가톨릭 성당이 있어도 신부(사제)는 없다. 북한 정권이 바티칸 시국과 관계를 맺지 않고 서품받은 사제를 엄격히 금지한 까닭이다. 북한에 존재하는 일부 성당과 교회, 사찰 등 종교시설이 얼마나 형식적인지 가늠할 수 있는 대목이다. 프란치스코 교황의 방한으로 전국이 축복과 평화의 메시지로 충만한 우리와 대조적인 북한의 현실이다. 아이러니하게도 김일성의 어머니는 개신교 장로의 딸로 교회 활동에 적극적이었으며, 김일성은 오르간으로 찬송가를 연주하기도 했다고 전해진다. 그러나 김일성은 정권 초기에 교회 2,000채와 사찰 400채를 불태우는 등 가혹하게 종교를 억압했다.

제목에서 알 수 있듯 저자는 전직 영국 외교관으로 소련 붕괴 직후인 1993년에 영국 대사로 벨라루스에 파견돼 대사관을 개설했고 1998년에는 베이징의 영국대사관에서 정치부서를 이끌었고 2005년에는 좌파 정부가 집권한 우루과이에서 능숙하게 영국 대사의 임무를 수행한 인물이다. 그간의 행보는 저자를 북한으로 이끌었고 2006년 2월부터 2008년 7월까지 평양 주재 영국 대사로 근무하며 북한과 영국 간의 경제·문화 교류 활성화에 기여했다. 책은 저자가 북한에 머무르며 직접 관찰한 내용을 토대로 한다. 남한도 북한도 아닌 '제 3자의 시선'으로 북한을 바라봤는데, 북한이 종교를 엄금하는 이유에 대해 "19세기 말과 20세기 초에 한국에서 기독교가 급성장한 한 가지 이유는 지독한 빈곤과 억압적인 체제에 대한 민중의 낙담이었다"라며 "(북한에) 종교의 자유가 주어진다면 똑같은 이유로 신앙이 다시 한번 빠르게 퍼져나갈 가능성이 있다"는 식으로 냉철한 분석을 내놓는다.

결혼과 가족 구성의 경우 공개적 자유연애를 않는 북한 사람들의 구애 방식이 저자의 눈에는 '고리타분해' 보였다. 인상적인 것은 평양 시내 상류층의 결혼이었다. 결혼식은 주로 토요일 오전에 예식장에서 열렸다. 흰색 한복을 입고 머리에 화관(花冠)을 쓴 신부와 빌려 입은 서구식 정장 차림의 신랑이 결혼식 후 제일 먼저 찾아가는 곳은 가장 가까운 김일성 동상이었다. 동상 발치에 헌화하며 자신들의 결혼을 '영원한 수령'에게 바치기 위해서였다. 평양 곳곳에는 김일성 동상이 있지만 신혼부부는 가급적 평양 중심부 만수대 동상을 찾아가기에 대개 토요일 오전에는 꽃을 바치려는 신혼부부들이 많아서 줄을 서 기다리는 모습을 흔히 볼 수 있다고 한다.



책은 크게 3부로 나뉘어 저자가 관찰한 북한의 사람과 삶, 평양의 외국인들, 북한의 과거와 미래로 구성됐다. 북한의 일상부터 휴일·직장·식사·환경 등을 다룬 '북한 사회'편은 쉽게 읽히지만 '북한 정권과 인민', '북한 경제'로 넘어가면서 진지하게 책에 빠져들게 된다. 저자는 남한에 대한 북한 사람들의 태도를 "매료,시기,분노,선망이 뒤섞인 태도"라면서 북한 사람들은 정권의 반대 선전에도 불구하고 남한이 더 부유함을 알고 있으며 남한에 핵무장한 미군이 주둔하는 것으로 잘못 알려져 있다고 전했다.

북한 정권이 국제 공동체에 가하는 위협을 오목조목 짚은 저자는 고립무원의 북한을 현재 상태로 놔두는 것은 "안전한 처사가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그는 "북한이 도발할 때마다 (남한의) 매서운 대응이 다시 북한의 대응을 촉발해 상황이 통제 불능의 소용돌이로 빠져들 위험이 있다"고 지적했다. "우리 모두는 러시안룰렛 게임을 하고 있다"는 마지막 문장이 비장하게 읽힌다. 1만8,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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