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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 양극화 부르는 근로단축 논쟁

이용택 산업부장(부국장) ytlee@sed.co.kr


처음에는 그냥 안타까웠다. 월급이 채 100만원이 안되고 추석 연휴와 같은 빨간 날에는 그 작은 월급에서 쉰 만큼 일당이 빠져나가는 현실이 너무 가혹하다고 생각했다. 100여개가 넘는 케이블 방송에서 종사하는 조연출들 얘기다.

이들 조연출은 잡일을 도맡아 하고 밤새는 일도 허다하다. 월급도 말이 월급이지 하루하루 계산되는 일당이다. 어느 방송사든 다 비슷하다. 대부분 비정규직인 일용직으로 분류된 탓이다. 이들이 갈망하는 것은 근무시간이 아니라 월급이 적더라도 고정으로 받는 것이고 더 욕심을 내면 계약직으로 올라가는 것이다. 일용직에서 계약직, 이를 뛰어넘어 정규직까지 오르기 위해서는 각각 몇 년이 걸리고 각 단계별로 보이지 않는 높은 칸막이를 넘어서야 한다. 그 과정에서 상당수는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중도 포기한다. 그렇게 생긴 결원은 바로 다른 사람으로 채워진다.

여기까지만 보고 회사가 너무 야비한 것 아니냐고 탓한다면 현실을 모르는 푸념이다. 그 회사들 대부분은 경영난에 허덕이고 경기 부진에 나눠줄 수 있는 파이가 줄었다. 처우 개선이 문제가 아니라 고용 유지 자체가 힘들다. 그들의 처지가 안타깝지만 모른 채 눈감는 것은 어쩔 도리가 없기 때문이다.

법제화가 임박한 근로시간 단축 문제에 산업계와 노동계의 이목이 집중돼 있지만 이를 남의 일인 양 씁쓸하게 바라보는 근로자도 많다. 바로 일용직과 계약직이라는 신분을 가진 근로자다. 주당 근무시간이 68시간에서 52시간으로 줄고 임금 삭감 없는 근로시간 단축이 이뤄져도 그 혜택을 보지 못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그들에게 지금의 논의는 보호받는 근로자의 몫일 뿐이다.

임금 삭감 없는 근로시간 단축이 시행돼도 일용직의 임금은 계속 바닥을 헤매고 계약직은 2년에 한 번씩 새로운 자리를 찾아야 할 게 뻔하다. 일용직에 대한 보호장치라는 게 별 게 없고 계약직은 2년이 지나면 무기계약직이나 정규직으로 전환토록 했지만 2년이 되기 전에 회사에서 해고하면 그만이다. 그렇게 해도 모두 합법이다. 이들은 임금이 작아 회사가 절반을 내주는 4대보험 가입도 힘겨워한다. 지금 그런 근로자들이 넘쳐난다. 일용직을 포함해 근로계약기간이 1년 미만인 근로자가 무려 600만명이 넘는다. 이들에게 세계 최장의 근로시간을 줄이자는 주장은 호사일 뿐이다. 안정된 직장이 이들에겐 임금 상승이나 근로시간보다 더 절박하다. 여야와 정부, 노동계가 이런 현실까지 감안했는지 의문이 든다.



더욱이 정부는 근로시간을 단축하면 시간제 근로자와 같은 새로운 일자리가 창출될 것으로 기대하겠지만 자칫 잘못된 일자리만 양산할 가능성이 있다. 그들 역시 일용직이나 계약직의 범주를 벗어나기 힘들기 때문이다. 그렇게 되면 일용직과 계약직, 정규직이라는 신분사회만 더 고착화된다.

그러면 이들 600만명에 달하는 근로자를 고용하는 기업들은 어떨까. 액세서리 중소기업 대표로 백화점에서 매장을 운영하는 한 친구는 주 5일 근무제가 도입되면서 계약직 직원 수를 30% 늘려 간신히 법정 근로시간을 맞췄지만 그 결과는 적자가 누적되고 대출만 늘어났다. 이번에 또다시 근로시간을 단축하는데 이 위기를 어떻게 넘길지 가슴만 타들어가고 있다. 그는 월화수목금금금 일한다.

이런 기업이 지금 한국 사회에 부지기수다. 지난해 말 기준으로 코스피에 상장된 12월 결산법인 중 분석 대상 613개사 가운데 159개사가 적자고 코스닥시장에서는 919개사 중 273개사가 수지를 맞추지 못했다. 각각 25.9%, 30%에 달하는 비율이다. 이들은 그래도 상장까지 돼 있을 정도로 기업 규모를 갖췄으니 그나마 나은 편이다. 더 아래에 있는 수많은 중소기업은 경영난에 신음하고 있다. 일용직이나 계약직이라도 더 줄여야 할 판이다. 이들에게 임금은 다 주면서 근로시간만 줄이라면 돌팔매를 당할지도 모를 일이다.

이번 근로시간 단축 논의는 이런 문제를 모두 포함해 완충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근로자 간 양극화가 더 심해지고 상당수 중소기업은 아예 문을 닫을지도 모른다. 이런 고민을 하지 않는다면 너무 이기적인 처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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