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살은 막장의 선택이다. 여기에는 동서고금과 빈부귀천의 차이가 없다. 세계보건기구(WHO)에 따르면 자살의 동기가 989가지에 이른다지만 크게 두 가지가 있다. 명예나 위신, 명분에 집착해 삶을 포기하는 경우와 지칠 대로 지쳐 목숨을 버리는 경우로 나눈다면 일본의 자살은 전자가 압도적이다.
△에릭 홉스봄의 '의적의 사회사'에 나오는 섬뜩한 할복 한 장면. 일본 에도 시대에 떡장사가 한 무사에게 매달렸다. 당신의 아이가 내 떡을 훔쳐 먹었으니 배상하라는 채근에 '무가의 자식은 그런 짓을 하지 않는다'며 버티던 무사는 일본도를 빼어 아이를 베고 식도와 위장을 갈랐다. 떡이 나오지 않자 사색이 된 떡장사 앞에서 무사는 할복하고 말았다. 삶의 소중함과 아이의 귀여움도 '가난하지만 무사'라는 가치에 매몰돼 버렸다. 고대 서양도 비슷했다. 플루타르코스는 '영웅전'에 이런 대목을 써넣었다. "자살은 명예를 빛내기 위하여 할 일이지, 회피의 수단이 돼서는 안 된다."
△박정희 대통령이 시해 당한 직후 일본인들은 한국의 충(忠)과 의(義)를 비웃었다. 신도로 불릴 만큼 존경하고 충성을 바쳤다면서도 뒤따라 할복하는 수하가 전혀 없었다는 이유에서다. 명분과 목숨을 바꾼 일본인들의 사례는 이오지마(硫黃島)의 옥쇄(玉碎)에서 황군(皇軍)의 부활을 외치며 할복한 작가 미시마 유키오까지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다. 전율이 일지만 과연 명예로운 자살은 권장할 만한 것일까. 효율로 본다면 그 반대다. 개성과 자유를 중시하는 미국이 일본을 압도했고 지금껏 이어지고 있으니까.
△입학비리로 물의를 빚은 영훈국제중의 교감선생님이 목을 매 숨졌다. 안타까움의 한 구석에 의문이 피어난다. 가치를 지키기 위한 죽음과 포기, 둘 중 어느 것일까. '학교를 위해 한 일…'이라는 유서에 미뤄 혼자서 모든 책임을 떠안으려 했던 것 같다. 자살 의도를 측량하기 어렵지만 확실한 게 두 가지 있다. 죽기보다 살아서 해명하는 게 낫다는 점과 개인의 희생으로 비리구조가 덮어져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더 이상의 아까운 희생을 막기 위해서도 비리는 철저히 규명돼야 한다. 비리도, 자살도 스톱! /권홍우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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