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남한산성뿐만 아니라 서울 성곽과 북한산성을 합쳐 유네스코의 세계문화유산으로 신청하면 어떻겠느냐는 기사가 신문에 실렸다. 그 중 남한산성은 통일신라 시대부터 축조되기 시작했으며 조선의 인조가 청나라 태종에게 항복한 곳으로 나머지 둘에 비해 훨씬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다.
필자가 대학을 다니던 지난 1970년대 무렵 생태학 강의시간에 서울의 대기오염이 악화돼 남한산성에 이끼(地衣類ㆍ지의류)가 없어지고 그 흔적만이 성벽에 남아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역사에 무심하던 필자가 10여년 전에서야 처음으로 가족들과 남한산성을 오를 때 가장 먼저 살펴본 것도 성벽의 이끼였다. 수십년 전 들었던 교수님의 말씀대로 사라진 이끼의 흔적이 그때까지 남아 있었다.
대기오염 개선 노력의 성과물
지난해 경기도가 남한산성에 대한 세계문화유산 신청서를 준비할 때 필자는 자연환경 분야의 집필을 맡았다. 이 때 두 번째로 남한산성을 답사하며 나무ㆍ숲ㆍ건물이 아니라 성벽에 이끼가 있는지부터 살펴봤다. 그런데 놀랍게도 성벽이 온통 회색ㆍ노란색ㆍ빨간색 지의류로 뒤덮여 있었다.
우리가 흔히 이끼라고 부르는 생물에는 우산이끼ㆍ솔이끼ㆍ지의류 등 3가지 종류가 있다. 우산이끼와 솔이끼는 습기가 약간 많은 곳에 자라는 하등식물이다. 지의류는 균류(菌類ㆍ곰팡이)와 조류(藻類ㆍ말)의 공생체로 건조한 바위 표면이나 나무 껍질에 흔히 자란다. 균류와 조류를 떼어놓을 수가 없어서 둘을 합쳐 종(種)을 분류할 정도다. 지의류에서 광합성을 담당하는 조류는 한 층의 세포로만 돼 있어 대기오염에 무척 약하다. 당연히 대기오염이 심한 곳에서는 찾아볼 수 없다. 그래서 지의류는 대기오염 수준을 측정하는 지표종으로 사용되고 있다.
다른 일부 학문처럼 생태학도 유행을 많이 탄다. 지금은 온실 효과로 인한 지구 기후 변화가 주된 관심사이지만 1980년대와 1990년대에는 유럽ㆍ미국 등에서 산성비의 피해가 많이 논의됐다. 우리나라에서도 산성비가 남산에서 소나무가 없어진 원인으로 지목되는 등 환경파괴의 주범으로 받아들여졌다. 실제로도 그 당시 서울은 시내에서 63빌딩과 남산타워가 보이지 않을 정도로 대기오염이 심했다.
하지만 그동안 환경부를 비롯한 우리 정부에서 천연가스를 사용하는 시내버스 도입, 자동차 배기가스 방출기준 강화, 발전소와 공장 굴뚝의 탈질(脫窒ㆍ배기가스 중 광화학 스모그의 원인이 되는 질소산화물 제거)ㆍ탈유황ㆍ탈진장비 설치 의무화 등 여러 가지 시책을 도입해 대기오염이 크게 개선됐다. 남한산성 성벽에서 지의류가 부활한 것은 이러한 장기적인 대기오염 정화 노력의 성과물인 셈이다. 태풍이 불어온 후 며칠 동안 공기가 깨끗해졌다고 사라진 지의류가 되살아나는 것은 결코 아니다.
대기오염뿐만이 아니다. 수질오염이 매우 심했던 안양천ㆍ탄천 등의 수질도 많이 정화됐다. 그동안 함께 노력해온 정부와 시민들에게 아낌없는 박수를 보낸다.
자연환경 보전ㆍ복원 예산 늘려야
필자는 우리나라의 자연보전에 적극 관여해왔다. 자연생태계 보전과 복원에는 대기오염 정화보다 훨씬 오랜 시간이 필요하다. 이제는 자연생태계가 가지고 있는 생물다양성이 경제적 가치가 매우 큰 중요한 자원으로 인식되고 있다. 자연보호 지역 확대 등 과거보다 많은 개선이 이뤄지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필자가 보기에는 생활환경 개선에 비해 아직도 여러 가지로 부족하다. 실제 우리나라의 자연을 보호ㆍ관리하는 환경부 자연보전국의 1년 운영예산은 국립공원관리공단 지원예산을 제외하면 고작해야 고속도로에 1㎞ 터널 서너개를 만드는 공사비에 지나지 않는다. 생활환경의 지속적인 개선과 아울러 자연환경 보전과 복원에 대폭적인 지원이 이뤄지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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