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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나영 기자의 一日一識] <57> 햄릿과 이완용의 '도덕성 평형'

스스로 도덕적이라고 생각한다면 더 이상 사회를 위해 공헌하려 하지 않습니다. 이완용은 일제에 협조한 이유를 묻자 ‘우리 민족의 발전을 위해서 였다’고 답했다고 합니다. 본인이 옳다, 즉 도덕성 평형 개념이 그에게 작용한 것입니다./사진출처=designerspics

도덕성평형(Moral Equilibrium)이란 개념이 있습니다. 최근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 다니엘 카네만을 비롯한 22인의 석학이 발간한 ‘생각의 해부’라는 책에 따르면 사람은 누구나 스스로의 도덕성에 대해 적정 수준의 기준치가 있다고 합니다. 재미있게도 연구자들이 실험해 본 결과 자신이 도덕적이라고 느끼는 사람은 더 이상 사회를 위해 밝은 일을 하거나 희생하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반면 자신이 부족하다고 느끼는 실험 대상자는 계속해서 기부나 도움 주기 등을 통해 공동체에 공헌하려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인간은 누구나 도덕적이고 싶어 합니다. 그렇지만 스스로 생각하는 적정 수준을 넘어서면 더 이상 옳은 일을 위해 자신의 시간, 노력, 비용을 투자하지 않는다는 ‘도덕성 평형’ 개념은 스스로 옳다고 믿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의사결정의 잣대 중 하나인가 가늠하게 합니다.

직장에서의 인간관계에서도 도덕성 평형 개념은 작동합니다. 흔히 상사들이 그렇습니다. 자신이 갖고 있는 오래된 경험은 가치관과 철학으로 무장한 것이라고 믿는 경향이 강합니다. 그래서 부하들이 갖고 온 산출물에 대해, 또는 그들의 일상적인 행동에 대해 평가하고 재단하는 일에 크게 부담을 느끼지 않습니다. 때때로 조직의 발전을 위해 중요한 프로젝트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위험을 감수하려 하지 않는 모습도 ‘도덕성 평형’ 개념으로 설명할 수 있습니다. 스스로 갖고 있는 지위, 또는 자산을 허물지 않기 위해 더 이상 도전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는 것이죠. 때때로 그 이유는 산업계 내에서의 상도의나 자신이 경험해 온 오랜 시간 동안의 일 등이 중요한 근거가 되곤 합니다. 결국 상사가 전면에 나서서 발로 뛰어야 성공 가능한 일을 외면해 놓고, 자신이 옳다고 믿는 기준을 허물지 않기 위해 그랬다는 변명을 하기도 합니다. 아마 그를 고용한 최고경영자나 자신이 속해 있는 부서가 공적을 세워야만 계속해서 살아남을 수 있는 부하들 입장에서는 상당히 답답한 노릇일 겁니다.

조직 뿐만 아니라 사회 전반에서도 도덕성 평형 개념은 치명적인 기제로 작동합니다. 특히 정치인들의 경우가 그렇습니다. 자신이 걸어왔던 정치 역정은 변화와 혁신을 위한 길이고, 그것을 떠받치는 주변의 이해관계자들은 스스로의 명분을 위해서라면 얼마든지 희생되어도 좋다는 생각 등이 대표적입니다. 그래서 윤리적으로 저지를 수 없는 일을 해 놓고도 변명을 하거나, 사과를 하지 않고 ‘난국’을 타개하려는 모습을 보이기도 합니다. 지위가 올라갈수록 사람은 자신을 객관화하는 기제가 매우 떨어지고 공감 지능도 감퇴된다고 합니다. 어쩌면 주된 이유 중 하나는 스스로 옳은 삶을 살고 있다고 믿는 감정 자체 때문일지도 모르죠. 나는 옳기 때문에 무슨 일을 해도 크게 무리가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 패착을 만드는 겁니다.

따지고 보면 셰익스피어의 희곡 주인공인 ‘햄릿’이나 오래전 우리나라의 국권을 포기하는 데 앞장섰던 이완용이라는 인물도 ‘도덕성 평형’ 개념으로 설명이 가능합니다. 햄릿의 경우에는 아버지가 암살당해 왕권을 찬탈당했다는 의혹을 입증하기 위해 자신의 약혼녀와 장인이 될 사람, 그리고 어머니와 숙부를 불행으로 몰고 간 인물입니다. 비록 주변인들이 다소 햄릿 주변에서 비도덕적인 모습을 보였을 수는 있겠지만, 진실을 밝힌다는 이유만으로 그들을 불행으로 몰고 갈 권리는 햄릿에게 없었습니다. 그는 자신이 옳다는 감정을 소비한 겁니다.



이완용이 국권을 포기하는 각서에 서명하고 일제에 협조한 것도 ‘우리 민족의 발전을 위해서 그랬다’는 주장에 의해 정당화된 사실은 매우 유명한 일화입니다. 그는 오래 전 친러파 정치인으로서 소국 대한제국이 살아남기 위한 길은 강대국에 기대어서 자신의 역량을 축적하는 것이라고 믿었다고 합니다. 국제 정세에 의해 그 대상이 러시아에서 일본으로 바뀌었다 뿐이지, ‘나라를 잘 살게 만드는 길은 오로지 외부 세력에 의해 가능성을 확보하는 것’이라고 믿었던 이완용의 믿음은 당시 국민 전체를 불행으로 몰고 갔습니다. 그래놓고도 중요한 의사결정자였던 그는 평생 옳은 선택을 했다고 믿으며 살아갔죠. 그에게 도덕성이라는 기준은 상당히 느슨했던 모양입니다. 우리 모두 도덕성 평형의 주인공이 될 수 있습니다. 옳음을 소비하느라 주변을 돌아보지 않고 있는 것은 아닌지, 한 번 쯤 다시 생각해 보는 기회를 꼭 마련해야 하겠습니다.

/iluvny23@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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