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에 대한 서양인의 우월감은 언제부터 시작됐을까. 불과 200여년 전까지만 해도 서양인들은 동양(구체적으로 중국)을 문화수준이 높은 곳으로 흠모했다. '대항해 시대'가 시작된 16세기부터 19세기 초반까지 유럽인들은 동방을 문명과 지성을 갖춘 자신들과 대등한 지역으로 인식했다. 동서교류사를 전공한 미국 베일러 대학의 사학과 교수인 저자는 산업혁명 이전에 서양의 '오리엔탈리즘'이 형성되기 전까지만 해도 동서양은 서로 호혜적인 관계를 유지했다고 설명한다. 16~19세기 초에는 동양의 철학과 예술은 유럽의 종교와 과학 등과 만나 서로 영향을 주고 받았다. 도자기의 경우 17세기가 돼서야 유럽은 중국 수준을 따라 잡을 수 있었다고 한다. 중국에서 수입한 제품은 유럽인들에게 사치품으로 사랑 받아 귀족과 왕들은 중국 도자기 방을 만들고 도자기 수집에 열을 올렸다. 사상에서도 공자의 유교가 서양에 소개되면서 볼테르를 위시한 프랑스의 계몽주의자들은 윤리적이고 도덕적인 중국 사회와 유럽의 부패한 가톨릭 사회를 대조하기도 했다. 영국의 철학자 마르크스, 벤저민 프랭클린과 토머스 제퍼슨 같은 미국 정치인들도 중국의 법률 체계와 귀족 정치를 흠모했다. 하지만 중국이 폐쇄적인 정책을 고수하는 바람에 19세기 초반부터 서양의 독주가 시작됐고 이로 인해 동양은 미개하고 야만적인 황색인종의 낙후된 지역이라는 이미지가 고착됐다고 저자는 설명한다. 18~19세기 이전에는 유럽인들은 중국을 '방대하고 위대한 중화제국'이라고 부르며 칭송했던 반면 그 이후부터 '수수께끼 같은 알 수 없는 동방'이라는 표현을 쓰기 시작했다. 중국과 동양은 단지 그 과거로 인해 이국의 정취를 자아내는 근원이 됐고, 더 이상 그 시대의 지식을 제공하는 원천으로는 중요하지 않았다. 여기서부터 동양과 서양의 소통은 막히기 시작했고 그 결과 서로에 대한 왜곡된 이미지가 확대돼 오늘날에 이르게 됐다. 그렇지만 21세기는 서양의 오만과 중국의 모멸로 특징된 1800~2000년대와는 전혀 다를 것이라고 저자는 예측한다. 오리엔탈리즘이 형성되기 이전인 1500~1800년의 역사를 통해 과거의 오해를 극복, 새로운 시대의 호혜적 만남이 가능할 것이라고 견해를 밝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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