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외곽순환 고속도로를 30분쯤 달리자 한국의 실리콘밸리로 불리는 '판교테크노밸리'가 모습을 드러냈다. 최근 판교에는 보안과 게임, 모바일 등 굵직한 정보기술(IT) 기업들이 입주하면서 1990년대 역삼동 테헤란로를 잇는 제2의 벤처타운으로 자리잡고 있다. 판교 입성 5년 차인 중견 보안 기업 윈스테크넷은 판교세븐벤처스밸리에 위치하고 있다.
지난 2010년 첫 입주 당시 100명이었던 직원 수는 어느새 300명으로 늘어났고 1개 층을 사용했던 사무실도 3개 층으로 넓혔다. 이 같은 규모 확장은 탄탄한 매출과 기술력이 밑바탕이 됐다. 윈스테크넷은 지난해 말 국내 정보보안 업계 최초로 1,000만달러 수출탑을 수상했다. 지난해까지 기록한 수출은 1,600만달러가 넘는다.
매출도 16년 연속 흑자를 기록 중이다. 2011년부터 본격 진출한 일본 시장에서는 전체 매출의 20%를 끌어내고 있다. 상대적으로 규모가 작은 국내 보안업계에서 이 같은 혁혁한 성과를 이룰 수 있었던 비결을 묻자 김대연(56·사진) 대표는 그저 멋쩍게 웃으며 "운이 좋았다"고 답했다.
하지만 회사의 성공은 고집스럽게 한우물만 파온 김 대표의 뚝심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그는 "영국 속담에 '마지막에 웃는 자가 가장 잘 웃는 자'라는 말이 있다"며 "이를 좌우명으로 삼고 장기적인 시각과 꾸준한 자세로 임했다"고 말했다. 그의 인생관은 사업에 그대로 반영됐다. 실제로 외부환경에 좌지우지되기보다는 기술력에 집중해 시장을 멀리 내다본 그의 안목이 사업 성공을 이끌었다.
1990년대 후반 야심 차게 보안 업계에 뛰어들었지만 사실 김 대표는 그전까지 보안에 대해서는 아무런 경험이 없었다. 부산대 경영학과를 졸업한 후 코오롱그룹에서 사업부장과 미국지사를 거치면서 경영 노하우를 익혔다. 그러던 중 윈스테크넷의 전신인 윈스테크놀로지에 합류해 보안회사로 탈바꿈시켰다. 사업을 전부 제로(0)로 맞추고 재창업을 시도한 셈이다.
김 대표는 "오직 경영자의 마인드였기에 가능한 선택이었다"며 "당시 창업 붐이 불면서 벤처들이 우후죽순 생겨났는데 보안 사업의 시장성이 가장 돋보였다"고 소회했다. 이후 김 대표는 가장 잘할 수 있는 분야에 집중해서 최고의 기술을 가져야 한다는 사명으로 네트워크 보안에 집중했다. 그는 "초반부터 고급제품에 주력하는 등 시장 파악에 공을 들였다"며 "단기적인 이벤트가 아니라 긴 마케팅을 기획한 끝에 300여개의 관련 벤처들을 제치고 성공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김 대표의 선택과 집중 전략은 제대로 먹혀들었다. 사업 전환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윈스테크넷은 침해방지시스템(IPS)과 디도스(DDoS·분산서비스거부) 차단 시스템 분야에서 업계 1위를 달성했다. 2003년 출시한 침입방지 시스템 '스나이퍼 IPS'는 외부로부터의 공격을 탐지하고 사전 차단해 내부 네트워크를 보호하는 솔루션이다. 윈스테크넷의 주력상품으로 지난해에는 산업통상자원부가 지정하는 세계 일류상품에 선정되기도 했다. 세계 일류상품은 글로벌 점유율 5위 이내인 현재의 일류상품과 5년 내 5위권 진입이 가능한 차세대 일류상품을 선정해 기술개발부터 해외 마케팅까지 종합적으로 지원하는 제도다.
김 대표는 "사건이 발생했을 때 적시적소에 기술을 공급했던 것이 성과를 얻는 데 큰 도움을 줬다"고 언급했다. 아무리 첨단 기술을 가지고 있더라도 그 기술이 필요할 때 바로 공급할 수 있어야 진정한 빛을 발한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그러면서 김 대표는 "시장 현실을 반영하는 서비스가 중요한데 결국에는 개발자들의 기술 역량에 달렸다"고 강조했다.
또 그는 초반부터 통신사를 공략 대상으로 잡고 사업을 진행했던 것도 성공 비결이라고 귀띔했다. 김 대표는 "통신사는 고성능 기술을 제일 먼저 도입하는 등 네트워크 보안 쪽에서는 하이엔드(high-end·고급) 시장"이라며 "통신사 납품에 성공하면 그만큼 기술적인 성능을 인정받는 셈"이라고 설명했다. 이 전략은 일본에서도 그대로 발휘됐다. 통신사 시장부터 공략한 결과 국내 보안업체 중 드물게 해외에서 상당한 매출을 올리고 있다.
윈스테크넷은 2011년부터 본격적으로 일본 시장에 진출했다. 첫 시작은 일본 최대 통신업체에서 개최한 10G IPS 솔루션의 경쟁성능테스트(BMT)였다. 당시 BMT는 6개월간 진행됐는데 시스코와 맥아피 등 쟁쟁한 글로벌 기업 7곳이 참가했다.
김 대표는 "마치 축구 토너먼트 경기처럼 진행돼 마지막 순간까지 진땀을 뺐다"며 당시를 회상했다. 결과는 윈스테크넷의 승리. 1·2차 테스트에서 모두 1위를 차지하면서 기술력을 인정받았다. 김 대표는 "사실 한국산을 선택하지 않을 확률이 높았는데 우리의 적극적인 태도가 유리한 상황을 만들었다"며 일화 하나를 들려줬다. 당시 일본은 동일본 쓰나미와 후쿠시마 원전사태로 아비규환이었다. 대내적으로 상황이 불안하고 심지어 전기조차 잘 안 들어오자 유수의 보안업체 기술자들이 철수하는 상황이 발생했다. 그러는 와중에 윈스테크넷은 연구개발소장까지 일본에 상주하면서 자리를 지켰다. 이것이 워낙 까다롭기로 소문난 일본 사람들에게 신뢰감을 줬다는 설명이다. 마치 낙타가 바늘구멍에 들어가는 것보다 어려운 과정을 통과한 효과는 매출에 바로 드러났다. 2010년 1억원 수준이었던 해외매출이 2011년 37억원, 2012년 150억원으로 훌쩍 뛰었다. 연일 주가가 상승하는 등 시장 반응도 뜨거웠다. 김 대표는 "일본의 경우 평가기준이 매우 까다로운 시장이지만 국내보다 보안시장이 2~3배 커 인정을 받으면 좋은 기회가 될 것으로 판단했다"며 "현재 NTT도코모에 10G IPS를 공급하고 있는데 이를 기반으로 앞으로는 공공기관과 일반 기업의 관제 서비스로도 시장을 개척해나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또 김 대표는 "인수합병(M&A) 계획은 항상 있다"며 "회사의 성장을 위해 적합한 곳이 있다면 언제든 추진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기술을 중심으로 덩치를 키워가는 수단으로서 M&A는 항상 고려할 만한 일이라는 것. 앞서 윈스테크넷은 2008년 인터넷방송업체 나우콤(현 아프리카TV)과 결합을 시도한 바 있다. 그러나 2010년 다시 기업 분할을 선택하고 이듬해 윈스테크넷으로 돌아와 상장했다. 김 대표는 "당시 우리는 네트워크 보안이 강했고 나우콤은 네트워크 트래픽이 몰리는 서비스를 하고 있었다. 나우콤이 우리의 기술을 통해 안전하게 서비스를 제공하면 충분히 시너지가 날 수 있었다는 판단에 선택한 결정이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실제 들어가 보니 사업의 성격이 너무 달랐고 정치적인 상황과 맞물려서 분리매각을 결정할 수밖에 없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김 대표는 "지금은 두 업체가 모두 각자의 분야에 집중해 성공을 거두고 있다"며 "옳았던 선택이었다"고 평가했다.
김 대표는 올해 해외시장과 신규사업 확산에 집중한 경영전략을 펼칠 계획이다. 보안관제·보안SI·보안컨설팅 등을 비롯해 지난해 처음 선보인 개인영상정보보안 사업과 지능형지속위협(APT) 대응 솔루션을 보다 고도화해 글로벌 시장 진출의 발판으로 삼을 예정이다. 그는 "2년 전 지식경제부가 지정하는 월드클래스(WC)300 기업에 선정됐다"며 "해외 매출이 국내 매출보다 많은 세계적인 보안회사가 될 것"이라고 자신했다.
김 대표는 매출 820억원, 영업이익 170억원을 올해 목표로 제시했다. 윈스테크넷은 2011년 418억원, 2012년 622억원, 2013년 724억원의 매출을 기록했다. 10여년이 넘게 보안업계에 적을 두고 있는 김 대표는 "내수시장은 이미 성숙 단계에 달했다"며 "보안 특성상 외산 솔루션에 대한 거부감이 있어 진입장벽이 높지만 해외시장 진출을 가속화해야 국내 보안업계가 발전할 수 있다"고 조언했다.
사진=권욱기자
● 김대연 대표는 |
"조직에 활력 불어넣자"… 수요일마다 직원들과 산행 박민주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