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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너지 신 냉전시대] 1부. 격화되는 패권다툼 <1> '천연가스 무기화' 러시아

유럽 가스 쥐락펴락·중국과도 빅딜… 미국 셰일혁명에 맞불

서방측 수요 감소 대비… 亞시장 수출 활로 열어

'균형공급자' 지위 확보

에너지전쟁 실탄 쌓기… 셰일가스 개발도 지원


# 지난 2월 부대표시와 계급장을 모두 뗀 군복을 입은 수천 명의 러시아 군인이 크림반도의 우크라이나 국경지대를 넘었다. 국경 검문소와 주요 군사시설, 여객선 터미널 등을 모조리 장악하기까지는 불과 며칠이 걸리지 않았다. 러시아의 이런 공세 탓에 크림반도는 우크라이나로부터 분리독립을 한 뒤 러시아와 크림반도 합병 수순을 밟았다.

# 올해 5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10년간 끌어왔던 가스공급 협상에 도장을 찍었다. 러시아가 가스관을 통해 30년간 중국 가스 소비량의 22%에 해당하는 천연가스를 중국에 공급하는 내용이다. 가격은 러시아의 대(對)유럽 수출가격보다 낮은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러시아가 손해를 감수하면서 중국과 손을 잡은 것은 '에너지 패권'의 위협에 대한 반격이다.

숨 가쁘게 진행된 러시아의 크림반도 합병과 중국에 대한 가스공급 계약 뒤에는 '에너지 신(新)냉전'이 도사리고 있다. 미국의 셰일가스 혁명에 위기감을 느낀 러시아가 역내에서 영향력을 과시하기 위해 무력시위에 나선 것이다. 영국 옥스퍼드 에너지연구소의 백근욱 선임연구원은 "유럽에 가스수출을 의존하던 러시아가 중국과의 가스공급 계약을 통해 서방 측 주문감소에 대응할 수 있는 '스윙 공급자(swing supplier)'의 지위를 확보했는데 이런 상황이 결과적으로 유럽에 악몽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가스밸브' 하나로 유럽 쥐락펴락=러시아 국영가스회사 가스프롬이 지난해 유럽에 수출한 천연가스는 1,550억㎥. 유럽 전체 수요의 30%에 달했다. 유럽 1위 경제대국 독일의 경우에는 36%가 러시아산 가스다. 더욱이 핀란드·발트3국·체코·불가리아 등은 지난해 수입한 가스 모두 러시아산이었다. 폴란드 80%, 슬로바키아 99.5%, 오스트리아 71%, 그리스 59.5% 등 지리적으로 러시아와 인접한 국가들의 러시아산 의존도가 높았다.

러시아는 유럽으로의 천연가스 공급을 모두 '가스관'을 이용한다. 우크라이나를 경유해 유럽에 공급하는 가스 비중도 15%에 달한다. 우크라이나를 경유하는 가스관 밸브만 차단해도 유럽 전체는 충격의 도가니에 빠질 수밖에 없다. 러시아는 실제로 가스관을 무기로 유럽 전체를 압박하고는 했다. 2005년 12월 러시아 정부는 우크라이나에 대한 가스 수출가격을 당시 국제 가격인 1,000㎥당 160달러로 인상하겠다고 통보하면서 2006년 1월1일 가스공급을 전면 중단했다. '1차 가스공급 중단'이다. 유럽연합(EU) 등의 개입으로 가스공급은 이틀 뒤 바로 재개됐지만 유럽국가들은 공황 수준의 심리적 영향을 받았다. 러시아가 한겨울에 가스밸브를 잠그면 국민들의 안전이 위험해질 수 있다는 공포를 맛본 것이다. 2차 가스공급 중단은 2009년 1월1일에 전격 단행됐다. 우크라이나의 가스대금 21억달러 체불이 발단이 됐다.



현재 진행형인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3차 가스 갈등 역시 직접적인 원인은 가스대금 미납이다. 가스프롬은 우크라이나의 체납액이 44억5,000만달러에 이른다며 이 중 19억5,000만달러를 즉각 입금해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국제통화기금(IMF)으로부터 구제금융을 받고 있는 우크라이나로서는 감당하기 어려운 금액이다. 상환능력이 없는 우크라이나가 '버티기'에 돌입하고 EU 등 서방국가들이 경제제재에 나서면서 러시아는 점점 긴장감을 고조시키는 작전을 내세울 것으로 보인다.

러시아 입장에서 보면 세입예산의 50%가량이 원유와 천연가스 수출 판매대금으로 충당되기 때문에 에너지 위기가 국가 재정위기로 이어질 가능성도 있다. 더욱이 최근 몇 년간 에너지 가격이 하향 안정세여서 세수에 구멍이 발생하고 있는 형편이다. 강정욱 한국가스공사 경영연구소 책임연구원은 "러시아가 크림반도에 대한 실효지배를 유지하며 교착상태가 장기화하는 일명 '얼어붙은 갈등(frozen conflict)' 시나리오의 실현 가능성이 높다"며 "주변국 입장에서는 에너지 위기가 상시화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권불십년? 짙어지는 위기감…대규모 자원개발로 맞불=러시아는 대외적으로 에너지 무기화 전략을 노골화하는 한편 미국발(發) 셰일혁명에 대응해 거들떠보지 않았던 셰일가스 개발에 눈길을 돌리고 있다. 에너지 '실탄'을 충분히 챙겨둬야 향후 미국의 물량공세 앞에서도 목소리를 낼 수 있다는 포석에서다.

부존자원 개발을 위한 러시아의 정책적 대응은 금융·세제 등 모든 분야를 망라하고 있다. 특히 셰일가스 개발의 경우 세금 '무풍지대'로 통할 정도다. 러시아 정부는 지난해 세법개정을 통해 서시베리아 지역인 바제노프 등에서 이뤄지는 셰일지층 개발사업에 대해서는 앞으로 15년 동안 지하자원채굴세를 면제하기로 했다. 러시아 에너지부는 이러한 세금혜택을 받는 지역을 더 늘려달라고 제안한 상황이다. 이런 혜택에 따라 노르웨이의 스타토일 등 유력 에너지 기업들은 러시아 국영기업과 손잡고 에너지 개발에 나서고 있다. 가스 생산량도 늘리고 있다. 가스프롬은 지난해 야말 지역 최대 가스전의 연간 생산량을 당시 30bcm에서 올해 60bcm 이상으로 높이겠다는 계획을 밝힌 바 있다. 가스프롬은 또한 야말 지역 내 탐베이 매장지대에서 올해까지 93억달러를 투자해 향후 3년간 36개의 탐사정을 시추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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