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과 북한이 6자회담의 조건 없는 재개를 강력히 요구하고 있다. 얼핏 보면 중국과 북한이 북핵 문제의 해결을 모색하는 대화론자이고 한국과 미국은 대화를 거부하는 강경론자로 보인다. 실상을 보면 북한은 지난 20년간 핵협상을 국제제재 완화와 핵개발을 위한 시간 벌기에 남용해왔다. 최근 북한의 대화 요구도 확보된 핵능력을 기정사실화하고 3차 핵실험 이후 더욱 강화된 국제제재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술책에 지나지 않는다.
그렇다고 핵협상을 마냥 미룰 수도 없다. 북한의 핵활동이 지속되고 핵무장력도 증가일로에 있다. 비핵화 비용도 증가하는 경향이 있다. 중국이 6자회담 재개를 위한 중재외교를 활발히 추진하고 있다. 만약 북한이 9ㆍ19 6자 공동성명을 재확인하고 핵활동을 중단한다면 회담 재개를 위한 분위기가 조성될 것이다.
서로 신뢰 없는 시간끌기 소득없어
새로이 핵협상이 재개된다면 더 이상 과거처럼 핵협상의 악순환이 반복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이를 위해 지난 20년에 걸친 비핵화 외교의 실패에서 얻은 교훈을 찾아야 한다.
첫째 우리는 북한의 체제 내구성과 핵개발 의지를 과소평가해 '시간은 우리 편'이라고 보는 경향이 있다. 우리는 1994년 제네바합의 체결 당시 북한의 붕괴가 임박했다는 판단하에 시간 끌기 차원에서 합의집행에 소홀했다. 제재를 가하고 기다리는 '전략적 인내'정책도 별 성과가 없었다. 북한은 제재의 고통 속에서 오히려 핵개발 결의를 다지고 핵실험을 실시했었다. 김정은 정권이 들어선 후 체제위기론이 재등장하면서 시간 벌기 전술이 또 관심을 끌고 있지만 과거 시간 벌기의 부작용을 감안할 때 주의해야 한다.
그 다음으로 북한은 특별히 높은 핵무장 동기를 갖고 있어 일반적인 비핵화 해법을 적용하기 어렵다. 비핵화 성공사례로 손꼽히는 우크라이나ㆍ남아공ㆍ아르헨티나ㆍ브라질ㆍ리비아 등은 모두 탈냉전기 들어 생존을 위해 자발적으로 핵을 포기한 경우다.
반면 북한은 탈냉전기 들어 생존을 위해 핵무장을 시도한 사례이다. 따라서 북한에 비핵화를 강요하기 위해서는 다른 사례와 달리 매우 강도 높은 압박과 유인책이 필요하다. 그런데 북한에 강도 높은 압박과 유인책을 동원하는 것은 어렵다. 강도 높은 압박은 한반도 위기를 초래하고 유인책은 종종 양보로 비판 받기 때문이다.
협상목표 낮추고 긴호흡 준비필요
셋째 남북, 미북 간 극단적인 불신, 근본적인 이해관계의 충돌, 적대감 등 협상이 파행적이다. 또한 상호 신뢰수준에 비해 너무 높은 협상목표를 추구한다. 한미는 북핵의 '완전하고 검증가능하며 불가역적인 해체(CVID)'를 요구하고 북한은 미국의 적대시 정책 중단, 평화협정 체결, 경제제재 해제, 수교 등을 요구한다. 북한은 미국이 체제전환과 정권교체를 추구한다고 의심하고 있으며 한국은 흡수통일을 추구한다고 믿고 있다. 따라서 상호 신뢰구축이 없다면 실질적인 비핵화의 진전을 기대하기 어렵다.
6자회담이 중단된 지 5년이 지났다. 그동안 6자회담 참여국의 지도자 대부분이 바뀌었다. 이들의 외교노선도 변했다. 북핵협상에 대한 기대감도 없지 않다. 그런데 우리가 필요한 것은 바른 핵협상이지 빠른 협상이 아니다. 5년 만에 찾아온 새로운 핵협상의 기회를 놓치지 않기 위해서는 보다 철저한 준비가 필요하다. 만약 또 실패한다면 6자회담 참여국 모두가 큰 비용을 치러야 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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