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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판을 가로지르며 씨를 뿌리는 농부의 모습은 복음을 전파하는 순교자나 적진을 향해 돌진하는 투사만큼이나 영웅적이다. 장 프랑수아 밀레(1814~1875) 이전까지는 어떤 화가도 군주와 교황 혹은 신화·역사의 주인공이 아닌 인물을 이처럼 그림 한가운데 신성한 분위기로 묘사하지 못했다. "자신이 처한 현실 외에 다른 어떠한 모습은 상상조차 하지 않는 듯 일에 전념하는 모습의 인물들을 그리고 싶다"고 한 밀레의 말처럼 그는 삶 그 자체의 신성함과 일상의 영웅성에 주목했다. 농부의 얼굴은 이목구비를 알아보지 못할 정도로 어둡다. 이는 임무 완수에 대한 목적의식과 근엄함을 강조하려 한 밀레의 의도적 표현이다. 너무나 과감했는지 이 그림은 당시 지배계급 위주의 살롱전에서는 혹평을 피하지 못했다. 하지만 평민계급에서는 '사회주의 봉기를 위한 포스터에 사용될 만한 인물'로 절대적인 지지를 받았다. 그러고 보면 농부의 빨간 상의와 푸른 바지, 하얀 자루가 프랑스 대혁명 이후 국기 색과 같다. 이 그림을 보고 감명 받은 고흐는 밀레의 태도를 화가의 이상향으로 삼고 같은 제목의 유화를 12점이나 모사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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