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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경이 만난 사람] 박병원 전국은행연합회장

경제 뿌리는 고용… 서비스 산업 키워 일자리 늘려야<br>새 대통령 매달 고용대책 비상회의 개최를<br>세계 수준 서비스업종 만들면 국제수지 개선<br>경영 연속성 해치는 금융 CEO 잦은 교체 문제<br>은행 수익성 부담 주는 사회공헌 요구해선 안돼



박병원(60ㆍ사진) 전국은행연합회 회장은 공무원 시절 자타가 공인하는 '천재 관료'이자 '걸어 다니는 백과사전'이었다. 경제 관료 출신이지만 그림을 비롯해 문화, 심지어 꽃과 와인에 이르기까지 그가 갖고 있는 상식의 힘에는 한계가 없었다.

우리금융 회장과 청와대 경제수석에 이어 은행연합회장이라는 조금은 낯선 자리에 오른 지 1년. 박 회장은 요즘 어느 때보다 대한민국의 미래에 대해 깊은 고민을 하고 있다. 수십년의 공무원 생활 때보다 고민의 깊이는 더 깊다.

그 중에서도 그가 천착하는 부분이 바로 '고용'이다. 그의 발언의 90%는 일자리이고 '고용전도사'라는 말이 모자랄 정도다. 그리고 최근에는 서비스산업총연합회까지 만들면서 끝내 결심을 실행에 옮겼다.

박 회장은 15일 서울 명동 은행회관 집무실에서 만난 자리에서도 고용의 중요성을 입이 마르도록 강조했다. 그는 "경제를 말할 때 흔히 수출, 성장률 등에 대해 말하지만 모든 경제 문제의 근본이자 뿌리는 고용" 이라며 "새 대통령은 고용대책 비상회의를 한 달에 한 번씩 개최하고 모든 정책을 펴기에 앞서 고용영향평가제도를 실시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면서 "제조업에서 일자리가 추세적으로 줄어들고 있는 만큼 서비스 산업을 키워야 한다"며 '서비스 찬가'를 토했다.

민감한 질문에는 잠시 숨을 고르기도 하면서 인터뷰는 예정된 시간인 1시간을 훌쩍 넘겨 90여분간 진행됐다. 금융 산업의 정치화와 관련해서는 우리금융 회장 재직 시절의 에피소드를 들려주며 "인사가 잘됐는가는 시장이 말해준다"고 경험담을 대신했고 사회적 기업으로서 은행에 대한 압박에 대해서는 "수익성이 커야 사회공헌도 가능한 만큼 샘의 원천을 말려서는 안 된다"고 우려를 표했다.

정책 집행에 앞서 고용영향평가제 실시해야

박 회장의 뇌리를 단단히 포박한 키워드는 단연 '고용'과 '서비스'였다.

스스로도 2001년 이후 변함없이 이 두 가지만을 말해왔다고 강조했다.

서비스산업발전선언문의 첫머리에 '1,700만 서비스 산업 종사자가 묻는다'는 문구를 넣은 것도 내수부진ㆍ양극화 등 모든 문제의 발원지가 고용임을 보여주기 위한 일종의 상징이라고 부연했다. 그러면서 그는 "고용이라는 프리즘을 통해 경제정책이나 경제현상을 바라볼 필요가 있다"며 '방과후학교'를 예로 들며 '고용영향평가제'라는 화두를 꺼냈다.

"학교에서 방과후학교를 운영하는 것은 요새 맞벌이 부부가 많으니까 굉장히 좋은 취지예요. 그런데 이 제도 때문에 학교 인근 예체능 학원이 다 어려워졌어요. 방과후학교가 결국 인근 학원의 고용을 엄청나게 줄이는 결과로 나타났죠. 통계를 봐도 2010~2011년 교육산업에서 고용이 10만명 이상이 급감했거든요. 만약 고용정책영향평가를 했더라면 방과후학교의 부작용을 최소화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봐요. 정책 효과를 예측하고 정책을 실시하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과는 천양지차입니다. 그런 섬세한 정책 집행이 필요해요."

최우선 의제로 고용을 설정하려는 의지가 부족하다는 견해도 내놓았다.

박 회장은 "기업을 평가할 때 수익 관점에서뿐만이 아니라 고용 측면에서도 다뤄야 한다"며 "정부도 고용진흥대책회의를 하든 고용확대정책회의를 하든 이 문제 해결에 집중해야 한다"고 말했다.

서비스 키우면 일자리 늘고 국제수지도 개선

박 회장은 9월 출범한 서비스산업총연합회의 회장을 맡았다.

평소에도 그는 서비스산업만이 일자리를 늘릴 수 있다는 소신을 말해왔다.

농업과 제조업에서 일자리가 추세적으로 줄고 있는 상황에서 매년 30만개의 일자리를 만들려면 서비스 말고는 답이 없다는 것. 그런데도 아직까지 서비스업을 바라보는 시각이 규제의 대상으로만 머물고 있는 데 대한 안타까움을 토로했다.

박 회장은 골프장 규제를 일례로 꼽았다. 그는 "2000년대 초반만 해도 골프장을 개설하려면 도장을 200군데는 찍어야 했다"며 "각고의 노력 끝에 5년간 규제를 없앤 결과 골프장에서 고용하는 규모만 6만명에 이른다"고 말했다. 서비스 업종에 대한 발상 전환을 통해 역차별을 없애면 서비스업의 국가 경제 기여도가 커질 것으로 봤다.

"제조업의 경우 경제자유구역이라는 것을 만들어 농지를 수용하고 전기세를 깎아주는 등 이런저런 혜택을 주는데 서비스산업에는 그런 육성책이 없어요. 서비스 산업도 생각만 바꾸면 좋은 일자리를 만들 수 있고 국제 수지 개선도 가능합니다."

예컨대 만약 세계 최고 수준의 요리학원을 만들면 전세계에서 이 학원에서 배우려는 수요가 생긴다는 게 박 회장의 지론이다. 이는 국제 수지 개선 효과로까지 연결된다.

박 회장은 "제조업은 흑자를 내고 서비스는 적자를 내는데 서비스업에서 적자 규모를 줄이면 수출을 늘린 것과 효과가 똑같다"고 강조했다.

CEO 잦은 교체 문제…인사 적정성은 시장이 미리 알아

금융 산업이 점점 '정치 금융'으로 변질되고 있다. 금융계에 권력형 정실인사가 만연하면서 벌써부터 대선 후보 눈치보기, 줄서기가 횡행하고 있다는 말도 들린다.

박 회장도 이런 우려를 잘 알고 있었다. 그는 과거 곤혹스러웠던 자신의 경험을 들려줬다.

"제가 우리금융 회장이 되고 나서 해외에 투자설명회(IR)를 다녔어요. 그런데 한 애널리스트가 '왜 회장이 바뀌었느냐'고 묻더라고요. 전임이 황영기 전 회장이었는데 당시는 파생상품 문제가 불거지기 전이었거든요. '관료 출신인 당신을 어떻게 믿느냐'고 물은 셈인데 난감하더군요."

그는 "가장 중요한 것은 시장이 납득할 수 있는 최고경영자(CEO)가 선임돼야 한다는 점"이라며 "금융사든 일반기업이든 퍼포먼스에 입각해 CEO가 선정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 회장은 특히 은행의 CEO가 너무 자주 교체되고 있다는 문제의식을 갖고 있다.

CEO 교체 자체가 리스크인 만큼 성과가 중간 정도만 돼도 바꾸기보다는 그대로 연임하는 게 경영의 연속성 관점에서 더 나을 수 있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모터보트는 확 돌 수 있지만 항공모함은 선회할 때 시간이 많이 걸린다는 비유를 곁들였다.



박 회장은 "CEO가 바뀌고 주식 시장에서 좋은 반응이 나오지 않는다면 인사에 흠이 있다는 징표"라고 말했다.

수익 못 내면 사회 공헌도 없어

사회적 기업으로서 은행권에 대한 요구가 날로 커지고 있다.

최근 잇따라 나온 하우스푸어 및 서민금융 지원책, 사회공헌활동 등은 크게는 '나눔과 배려'라는 시대 정신의 소산으로 볼 수 있다. 한편으로는 이익창출에만 혈안이 된 은행이 수수료나 가산금리 책정 등에서 불합리한 부분을 외면한 측면이 있었음을 감안하면 금융권이 이런 현상을 자초한 측면도 없지 않다.

그러나 박 회장은 "저금리 아래 수익성 악화가 현실화되고 있다"며 "은행에 지나친 부담을 줘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은행이 사회에 기여한다는 것은 일자리를 만들고 세금을 많이 내고 국내 기업의 해외 진출시 파이낸싱을 해주는 활동을 한다는 것입니다. 여기에 서민금융과 중소기업 금융을 확대하는 것이 추가될 수 있겠죠. 결국에는 은행이 돈을 많이 벌어야 좋은 일을 더 많이 할 수 있습니다. 공익적 요구가 수익을 남기지 못하는 수준이 되면 안 됩니다. 사회적 공헌도 지속 가능성을 항상 염두에 둬야 해요."

특히 하우스푸어도 은행에 일임해야 한다는 견해를 드러냈다.

박 회장은 "주식에 투자해 손실이 난다고 이를 보전해주지 않듯 집을 사서 문제가 났다고 은행보고 책임을 지라는 것은 잘못된 논리"라며 "더구나 대출이 부실화되면 실적과 직결되는데 은행이 대출 디폴트를 방치하겠느냐. 하우스푸어 대책을 자체적으로 준비해야 하는 유인이 있는 만큼 주위에서 이래라 저래라 흔들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금융권의 양도성예금증서(CD) 금리 담합 논란과 관련해서는 "아직 조사 중인 사안이라 뭐라 말하기는 어렵다"면서도 "담합 가능성은 매우 낮다고 본다"고 밝혔다.

박 회장은 "담합을 하려면 확실한 마켓 리더가 있어야 하고 이 리더가 일정 부문 부담을 떠안으면서 일을 도모해야 한다"며 "그런데 은행은 서로 극심한 경쟁관계를 형성하고 있어 구조적으로 담합하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메가뱅크에 대한 신념… "IB 등 갖춰야 세계무대서 경쟁"

이상훈기자 shlee@sed.co.kr

금융계에서 메가뱅크론은 여전히 뜨거운 감자다.

선진 금융회사와 경쟁하기 위해서는 덩치를 키워야 한다는 옹호론이 있는가 하면 금융위기 이후 은행의 대형화 규제 흐름과 맞지 않고 효율 없이 덩치만 커서는 세계무대에서 경쟁력을 갖기 어렵다는 회의적인 시각도 비등하다.

대표적인 메가뱅크 신봉자로 꼽히는 박병원 전국은행연합회 회장은 여전히 메가뱅크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여기에는 국내 은행이 이미 규모 대비 세계 최고 수준의 효율성을 보이고 있으며 더 성장하기 위해서는 덩치를 키우는 것이 선결조건일 수밖에 없다는 논리가 깔려 있다.

"은행이 꼭 사이즈가 커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국내 은행의 수준을 폄하하는 시각도 있지만 해외에서 살아본 경험상 누가 뭐래도 국내 은행은 규모 대비 효율성으로 세계 1등입니다. 그러나 어느 정도 사이즈가 돼야만 할 수 있는 일이 있어요. 대표적인 게 투자은행(IB)이죠. 메가뱅크가 되지 않고 더 이상 크기는 어려워요."

이런 그의 신념에는 우리금융 회장 시절 겪었던 경험이 적잖이 작용했다.

당시 그는 뉴욕ㆍ런던 등지의 유수 투자은행에서 최고의 인재를 수혈하기 위해 무지 애를 썼다. 그런데 결과는 참담했다. 입사 의사를 밝힌 이가 아무도 없었기 때문이다.

나중에 이유를 알아보니 그들은 "작은 은행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없다"고 말했다. 그때 박 회장의 충격은 컸다.

"한 뱅커가 그러더라고요. '투자은행에서 내가 1년에 수천만 달러를 벌어들여 회사에 기여하고 연봉으로 몇 백만 달러를 받고 있지만 이건 내 개인의 역량이 아니다'라고 말이죠.'내 역량은 극히 일부분이고 이보다 큰 것은 전세계 모든 비즈니스를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는 거대 투자은행의 네트워크, 그리고 결심이 서면 베팅할 수 있는 막강한 자본력'이라고요. 그런데 한국 은행에는 그게 없어 못 간다고요. 애국심이 없어서도 아니고 받는 돈이 적어서도 아니라고 하는데 할말이 없더군요."

박 회장은 이미 국내 은행의 소매금융은 포화 상태라고 말했다.

성장이 어려우니 해외로 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다만 은행 산업이 규제 산업이기 때문에 자칫 쪽박을 찰 수 있을 정도로 리스크가 크지만 그래도 해외를 바라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약력

▦1952년 부산 ▦1971년 경기고 졸업 ▦1975년 서울대 법대 졸업 ▦1975년 제17회 행정고시 합격 ▦2001~2003년 재정경제부 경제정책국장 ▦2003~2005년 재정경제부 차관보 ▦2005~2007년 재정경제부 제1차관 ▦2007~2008년 우리금융지주 회장 ▦2008~2009년 대통령실경제수석비서관 ▦2009~2011년 서울대 경영대학 초빙교수 ▦2010~2011년 중국 천진 남개대 초빙 연구원 ▦2011년~ 전국은행연합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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