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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세상] 세계 최초의 장애인 단체는 조선시대에?

■역사 속 장애인은 어떻게 살았을까(정창권 지음, 글항아리 펴냄)


"조선전기 시인이었던 고순은 비록 청각장애를 갖고 있었지만 성품이 독실하고 학문을 좋아했다. 또 여러 선비와 교류했는데 비록 서운한 일이 있어도 직접적으로 불만을 표출하기 보다는 순간적인 위트를 발휘해 재치 있게 다가갔다. 그래서 종국에는 마음까지 알아주는 진정한 친구가 됐다." (본문 중에서) 과거에도 고순뿐 아니라 시인 유운태, 척추장애인 시인이자 소설가 조성기, 지체장애인 시인이자 출판인 장혼, 지체장애인 시인 강취주 등 문인이나 화가ㆍ서예가, 음악가 등 장애인 예술가가 많이 존재했다. 그런데 이들은 휠체어나 의족, 그리고 타인과 대화를 할 수 있는 언어인 수화도 없이 어떻게 살아갈 수 있었을까? 고려대 교수인 저자는 과거 이 땅에 살았던 장애인의 삶에 대해 관심을 갖고 삼국시대부터 조선 말기까지 2,000년의 역사 속에 기록된 장애인 관련 사료를 통해 이들의 삶을 고찰해 들어간다. 역사와 문학, 회화, 음악, 법률, 풍속 등 다양한 분야의 장애인 관련 기록들을 한데 모아 당시 장애인의 삶을 입체적으로 살폈다. 저자는 "과거 장애인들은 잔질인(殘疾人), 독질인(篤疾人), 폐질인(廢疾人) 등으로 불렸으며 민간에서의 호칭은 '병신'이었다"며 "장애 보조 기구도 없고 장애인을 위한 편의시설도 미흡한 과거의 장애인들은 오늘날보다 매우 힘들게 살았을 것으로 생각되지만 실상을 들여다보면 그렇지도 않다"고 말한다. 실제로 서거정의 '태평한화골계전'이나 유몽인의 '어우야담'과 같은 책 속에 장애인이 등장하는 이야기를 보면 이들이 비장애인과 스스럼없이 농담하고 여행하며 자유롭게 살았음을 알 수 있다. 장애인을 위한 복지정책도 현대 사회 못지 않게 체계적이었다. 고려와 조선시대 기록을 보면 홀아비와 과부, 고아, 자식 없는 노인을 가리키는 환과고독(鰥寡孤獨)과 더불어 장애인들을 사회적 약자로 규정해 곡식이나 생필품을 지급했다고 나와 있다. 혼자 사는 나이든 장애인에게는 오늘날의 활동보조인인 부양자를 붙여줬으며 장애인과 부양자에게는 부역이나 잡역 등을 면제해주는 복지사회의 면모를 갖추고 있었다. 조선 전기에는 시각장애인 단체인 '명통시(明通寺)'도 설립, 국가 지원으로 운영됐다. 저자는 "다른 나라의 사례가 충분히 조사되지 않아서 단언하긴 어렵지만 세계 최초의 장애인 단체가 우리나라에 있었던 것이 아닌가 추측한다"며 "과거의 장애인은 과학기술이 발달하지 못해 몸은 좀 불편했을지라도 장애에 대한 편견은 훨씬 덜해 사회에서 비교적 자유롭게 살아갔다"고 주장했다. 최근 '도가니 사건' 등 여전히 장애인에 대한 편견과 차별, 심지어 폭력이 자행되는 요즘 책이 전하는 메시지가 묵직하게 다가온다. 2만 9,8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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