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국보
이광표 지음, 컬처북스 펴냄
일제때 성곽 잘리고 위상 격하 화재에 국보1호 교체 논란까지
암각화 다보탑 천마도 등 315건의 역사 뒷얘기 가득
| 1897년 모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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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제시대 성곽 잘린 모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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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25 직후 모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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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8년 화재에 무너진 모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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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구하다. 사람으로 치자면 팔자 드센, 국보 1호 숭례문이다. 1395년에 짓기 시작해 1398년 완공, 1447년 개축된 숭례문은 일제(日帝)가 들어오면서 파란만장한 역사가 시작됐다. 서울에 온 일본 왕자의 통행에 방해가 된다는 이유로 일제는 1907년 숭례문 주변 성곽을, 그 팔을 잘라냈다. '경성 남대문'이라 칭하며 보물 1호로 지정한 것은 1934년 1월. 국보가 아닌 보물이었고, 명칭도 '예를 높이 받는다'는 뜻의 본래 숭례문 대신 방향성만 담은 '남대문'으로 격하시킨 데는 식민지 조선을 폄하하려는 일제의 의도가 짙었다. 광복 이후 1962년에 국보 1호로 바뀌었고, 숭례문이 제이름을 찾은 것도 1997년에 와서였다. 숭례문이 국보1호로 합당한지에 대한 논란도 뜨거웠다. 1996년에 국보 1호 재지정 여부를 두고 여론조사가 실시됐고 현상태 유지로 결론이 났지만, 2005년 감사원이 '일제 잔재 청산' 명분으로 국보 1호 교체문제를 제기한 적이 있다. 급기야 2008년 2월에는 숭례문에 화재가 발생해 문루 1층의 10%와 2층의 90%가 불타 버렸다. 화재 발생 5년 만이자 복원 공사 개시 3년 만에 국민 앞에 모습을 드러낸 숭례문은 지금, 무리한 복원 과정과 부실 문제가 불거졌다. 단청이 떨어지고 금강송이라던 나무 기둥이 갈라졌다. 전통방식에 입각한 복원의 진위여부를 향해 국민의 눈이 쏠려있다.
저자는 문화재 전문기자로 전국을 누비며 국보 이야기를 채집하듯 모았다. 국보의 개념부터 미감과 숨은 뒷얘기, 훼손과 복원, 약탈과 반환 등 다양한 주제로 총 315건 국보의 거의 모든 이야기를 수록했다. '국보 교과서'라 할 만하다.
숭례문 못지않게 보존 문제를 두고 논란을 야기한 국보 285호 반구대 암각화도 과연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그림'인지 따져봐야 한다. 대체로 반구대 암각화는 청동기시대의 바위그림으로 알려져있다. 그런데 2004년 부산시립박물관에서 5,000년 전의 유물인 신석기 토기에서 사슴그림이 발견됐다. 반구대 암각화보다 2,000년이나 앞서는 것이었다. 게다가 반구대 오른쪽 하단의 사슴그림과 흡사했다. 이 바람에 반구대 암각화의 제작시기를 청동기가 아닌 신석기로 올려잡아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이듬해 더 오래된 그림이 발견됐다. 부산의 신석기 유적지에서 7,000년 전 것으로 추정되는 멧돼지 그림까지 나왔으니, 국내 최고(最古) 그림의 기록은 재정리할 필요가 있다.
책은 이처럼 유명한 국보의 잘 몰랐던 뒷얘기로 가득하다. 국보 191호 황남대총 금관을 위시한 신라의 금관들은 '금관이니 모자처럼 머리에 썼겠지' 생각할테지만, 머리에 썼던 실용품으로 보기엔 장식이 너무 많고 약하다. 왕이 머리에 썼다는 기록이나 물증도 없다. 과연 이 금관은 누구의 것이었으며 어떤 용도였는지는 학자들의 오랜 숙제로 남아있다. 불국사 대웅전 경내에 있는 국보 20호 다보탑도 미스터리를 안고 있다. 기단부 위쪽의 기둥과 난간을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2층탑, 3층탑, 4층탑까지 의견이 분분하다. 천마도의 동물이 말인지 기린인지, 벽돌을 쌓아 지은 전탑(塼塔)이 왜 경북 안동에서만 많이 발견되는지 국보에 얽힌 수수께끼가 숱하다.
저자는 이와함께 국보 지정번호 폐지, 활용과 복원의 문제, 문화재 반환 등 주요 이슈에 대한 진지한 물음을 던진다. "문화재 논란은 정치적 시각이 아닌, 순수한 시각으로 바라봐야 한다"는 게 그의 일관된 목소리다. 3만8,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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