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선두권으로 발돋움한 한국 건설의 시발점은 50년 전인 지난 1965년 11월. 현대건설이 태국 빠따니 나라타왓 고속도로 공사 일부 구간을 따내면서부터다. 기술도 자본도 부족한 마당에 아산 정주영은 왜 바깥으로 눈을 돌렸을까. 위기를 넘으려면 더 혹독한 시련을 맞더라도 큰 시장을 경험해야 한다는 아산 특유의 경영철학이 작동했기 때문이다.
당시 국내 건설업은 위기였다. 1960년대 초 4·19와 5·16 등 두 차례의 정치적 혼란을 겪으면서 정부는 대규모 토목공사를 벌일 여력이 없었다. 그나마 있던 발전소나 비료공장 등 플랜트 공사도 선진 외국 업체들의 몫이 됐다. 정부는 국내 업체는 기술력이 낮다며 공사를 맡기지 않았다.
국내에서도 기껏해야 외국 건설업체의 하청기업에 머물던 상황에서 아산은 '해외로 진출하는 길밖에 없다'며 모험에 나섰다. 아산은 속으로 두 가지 계산을 했다. 해외에 나가 선진기술을 익혀 기술혁신을 이뤄내고 국내 건설업 침체로 둔화된 조직에 활력을 불어넣자는 의도였으나 첫 해외진출에서 목표를 이루기는 쉽지 않았다.
당시 현대건설에서 가장 우수한 인력을 골라 나갔지만 기술진은 최신식 장비 사용법을 몰라 고장을 내기 일쑤였다. 공기 단축을 위해 밤낮으로 일하는 고된 작업 속에 현대건설은 막대한 적자를 맛봤다. 공사 자체는 손해였어도 최신장비 사용법과 선진공법을 익혔다. 소중한 경험은 경부고속도로 건설과 중동 등 해외 건설 시장에 본격 진출하는 밑거름이 됐다. 실패는 실패가 아니라 성공의 자양분이었던 셈이다.
아산은 1991년 해외건설협회가 발간한 '고난과 역경 그리고 교훈'이라는 책자에 기고한 글에서 태국 고속도로 공사를 현대건설이 참여한 가장 빛나는 이정표로 꼽는 데 주저하지 않았다. 이 글에서 이어지는 아산의 회고. "비록 금전적으로 300만달러라는 거액의 손해로 끝난 공사지만 그 모든 난관을 묵묵히 극복하며 공사를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준공함으로써 우리는 천금을 주고도 사지 못할 신뢰를 격전의 훈장처럼 받았다. 나는 지금도 빠따니 나라티왓 고속도로 공사를 실패한 부끄러운 족적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우리 현대가 크게 세계 속으로 발전하고 뛰어오른 도약의 발판이고 빛나는 이정표였다고 생각한다."
아산이 태국에 처음 진출한 뒤 50년이 흐른 올해 국내 건설업계의 해외 수주환경은 여러 어려움에 직면해 있다. 국제유가가 하락하며 재정상태가 나빠진 중동 산유국들은 플랜트 발주를 미루거나 줄이는 마당이다. 중국·유럽·인도 등 해외 경쟁업체들의 도전도 더욱 거세졌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국내 공공공사 입찰 담합이라는 꼬리표가 해외 수주 경쟁에서 부정적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김운중 해외건설협회 진출지원실장은 "지금 해외 건설은 선진 외국 기업과 중국·인도 등 후발 경쟁국 사이의 넛크래커 상황에 빠진데다 저유가까지 겹쳐 어려운 국면"이라며 "1960년대 한국 경제의 위기 상황에서 '하면 된다'는 신념으로 해외 진출을 결정한 정주영 회장의 불굴의 정신이 현재의 어려움을 타개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재용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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