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셧다운(정부 폐쇄)이 장기화할 조짐을 보이면서 그동안 잠잠했던 금융시장에도 서서히 파장이 일기 시작했다. 미 정치권의 대치국면이 이어지면서 코앞으로 다가온 부채한도 증액 협상 전망도 불투명해지자 '미국 디폴트(채무불이행)'라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할 가능성이 투자자들을 불안에 빠뜨리고 있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3일(현지시간) 미국의 국채 부도 가능성을 나타내는 신용부도스와프(CDS) 프리미엄은 이날 0.115%포인트 오른 0.44%포인트를 기록했다. 이는 지난 2009년 11월 이후 가장 큰 상승폭이다. 미 CDS 프리미엄은 지난달 0.21%포인트를 기록하며 4년여 만에 최저치를 기록했지만 셧다운을 전후해 연일 급등하고 있다. CDS 거래량도 크게 늘어 지난주에는 총 2억9,000만달러어치의 국채를 커버하는 10건의 거래가 성사된 데 그친 반면 이번주에는 거래건수가 56건(국채 21억달러)으로 늘었다. CDS는 채권이 부도날 경우 이를 갚아주는 일종의 보험으로 CDS 프리미엄 가격이 오르고 거래가 늘어난 것은 미국 정부가 지급 보장하는 국채에 보험을 들 만큼 불안해 하는 투자자가 늘고 있다는 의미다.
달러화 가격도 약세를 이어가고 있다. 이날 뉴욕 외환시장에서 주요 6개국 통화 대비 달러가치를 나타내는 달러 인덱스는 전거래일 대비 0.17% 하락한 79.87달러를 기록하며 8개월 만에 최저치를 기록했다. 반면 미국발 불안감이 고조되자 안전자산인 일본 엔화는 3일 뉴욕시장에서 약 1개월 만에 달러당 96엔대로 진입한 데 이어 4일에도 강세를 이어갔다.
셧다운 첫날 반등했던 미 증시도 투자자들의 불안감이 확대되면서 하락 곡선을 그리고 있다. 이틀 연속 하락한 다우존스 산업평균지수는 3일 1만4,996.48로 1만5,000선이 붕괴됐다. 아시아 증시도 전반적으로 약세를 보여 닛케이평균지수는 4일 장중 1만4,000선이 붕괴되기도 했다.
금융시장의 불안감은 미국의 핵심 경제통계 발표 중단이 현실화하면서 한층 고조되는 양상이다. 미 노동부는 3일 발표한 성명에서 "예산 지원 차질로 당초 4일로 예정된 9월 실업률 등 고용동향 통계 발표가 취소된다"며 "추후 발표 일정은 미정"이라고 밝혔다. 이날 상무부가 내놓을 예정이던 8월 공장주문 실적도 공개되지 않았다.
금융시장이 무엇보다 우려하는 것은 부채상한 협상 실패가 초래할 디폴트다. 정치권의 팽팽한 대립 속에 디폴트가 현실로 나타날 가능성이 고개를 들자 미국 은행들은 만에 하나의 사태에 대비해 현금보유액을 늘리는 등 대책마련에 나서기 시작했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미국 10대 대형은행 중 2곳이 미국 재정위기가 고조됐던 2011년 8월 당시의 매뉴얼을 다시 꺼내 활용하고 있다고 전했다. 대형은행의 한 임원은 "겁에 질린 고객들이 자금인출에 나설 경우를 대비해 평소보다 20~30% 많은 현금을 은행 창구로 보내고 있다"고 말했다.
금융시장에서는 정치권이 결국에는 부채한도를 올리기로 타협하겠지만 그 사이 진통은 불가피하다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특히 이달 17일 부채한도 시한을 전후해 미국 정치권이 벼랑 끝 대치를 벌이면서 수일 동안 기술적 디폴트가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17일 직후 만기가 돌아오는 1개월물 국채 수익률은 3일 전날보다 0.045%포인트 오른 0.1290%를 기록해 지난해 11월 이후 최고치를 나타냈다.
윌밍턴브로드마켓채권펀드의 윌머 스티스 공동 매니저는 "미 국채 장기물 수익률은 아직 안정적"이라며 "이는 차입 상한이 결국 조정될 것으로 시장이 판단한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다만 그는 "정치권이 끝내 합의에 도달하지 못할 경우 단기 자금시장은 물론 채권시장 전체, 나아가 전세계 자금시장이 흔들릴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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