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둑은 행마의 연속이다. 행마는 우군과의 연락 형태를 말한다. 절대로 끊어지지 않는 쌍점이나 마늘모가 행마의 초보이며 고수가 될수록 행마의 보폭이 넓어지고 화려해진다. 공격은 날일자로, 외목의 적극적인 씌우기는 눈목자로 하게 되며 힘자랑을 하는 사람은 밭전자를 쓰기도 한다. 상대방의 행마 가운데 어떤 부분을 끊자고 슬쩍 건드리는 행마가 들여다봄이다. 이 들여다봄의 타이밍이 고수의 바둑에서는 지극히 중요한 항목이다. 너무 빨리 들여다보면 이적행위가 되고 너무 늦게 들여다보면 상대방이 곱게 받아주지를 않는다. 흑35는 대표적인 들여다보기 수순이다. 이런 형태에서는 이 들여다봄을 보류할 이유가 없다. 이세돌은 계속해서 흑37로 날일자 씌우기로 나갔다. '공격은 날일자로'라는 기훈도 있으니 이 씌우기는 지극히 당연해 보인다. 그런데 이세돌은 복기때 이 수를 정답이 아니었다고 후회했다. 참고도1의 흑1로 얌전하게 지키는 것이 정수였다는 것이다. 백2면 흑은 다른 곳으로 손을 돌리게 되며 바둑은 이제부터였을 것이다. 실전에서는 백42까지의 수순이 펼쳐졌는데 이 수순을 보면서 독자들은 의문을 가질 것이다. 도대체 왜 흑37이 안좋은 수냐고 묻고싶을 것이다. 아닌게 아니라 실전보의 백42까지 된 상태에서는 흑37이 전혀 나쁘지 않은 수가 되고 말았다. 그 원인은 백38이라는 악수 때문이었다. 백38로 들여다본 수는 이적행위였다. 참고도2의 백1 이하 7로 하변 흑을 모조리 잡는 수단을 스스로 없앤 한심한 수였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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