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월드컵 4강 진출 때부터 한국 축구는 매 대회 스타를 배출했다. 2002년에는 안정환의 결정력이, 2006년 독일 월드컵과 2010년 남아공 대회 때는 박지성의 카리스마가 대표팀의 트레이드마크였다. 2006년에는 1승1무1패를 거두고도 16강이 좌절되는 불운을 겪었지만 원정 첫 승과 프랑스전 1대1 무승부 등으로 강한 인상을 남겼다. 프랑스전 동점 골이 박지성한테서 나왔다. 남아공에서는 첫 경기에서 그리스를 2대0으로 꺾으면서 사상 첫 원정 16강의 역사를 썼다. 그리스전 쐐기 골도 박지성의 발에서 터졌다. 홍 감독은 올 1월부터 박지성의 대표팀 복귀를 추진했으나 박지성의 거절로 복귀는 무산됐다.
이번 대회에서는 박주영이 안정환 역할을 해줄 것으로 기대됐다. 남아공에서 16강을 결정짓는 프리킥을 꽂아넣은 것도, 2012 런던 올림픽에서 일본을 무너뜨리는 동메달 확정 골을 터뜨린 것도 박주영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소속팀 아스널과 왓퍼드에서 거의 출전 기회가 없던 박주영은 월드컵에서도 달라지지 않았다. 성적은 2경기 슈팅 1개. 그마저도 풀타임을 소화할 체력이 모자랐다. 결과적으로 홍 감독의 도박은 쪽박으로 끝나고 만 것이다. 박주영의 쓸쓸한 퇴장으로 골잡이 부재라는 한국 축구의 깊은 고민이 다시 부각하고 있다. K리그에서도 최전방 공격수를 거의 다 외국인으로 뽑는 형편이다 보니 토종 골잡이가 자랄 토양 자체가 마련되지 않고 있다는 지적이 설득력을 얻는다.
박지성 역할은 이청용(볼턴)이 해줄 줄 알았다. 남아공에서 2골 등으로 활약이 컸고 '미스터 쓴소리'로 불릴 정도로 소신도 있었다. 그의 조용한 리더십이 어린 선수단을 뭉치게 할 것으로 전망됐다. 하지만 2011년 여름 정강이뼈 골절의 트라우마를 갖고 있는 이청용은 첫 경기 풀타임 출전 뒤 제 컨디션을 찾는 데도 힘이 모자랐다. 팀을 돌볼 여유조차 없었다. 1차전 뒤 정상 훈련을 거른 이청용은 부상 의혹을 일축하고 알제리전에 선발 출전하기는 했지만 64분 만에 교체됐다. 27일(한국시간) 벨기에전에서도 교체해주지 않는 홍 감독이 이상하게 여겨질 정도로 무기력했다. 돌파는 번번이 가로막혔고 패스는 부정확했으며 시야도 좁았다. 몸 상태가 썩 좋지 못한 상태에서 리더로서의 부담이 겹친 데 따른 부작용인 듯했다. 한 방으로 분위기를 바꿀 킬러도 없고 구심점 역할을 할 리더도 없는 대표팀은 알제리전에서 보듯 작은 위기에도 크게 흔들릴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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