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후계 구축 과정에서 군부 내 후견인 역할을 했던 리영호 인민군 총참모장이 모든 직무에서 해임되고 후임에 현영철 차수가 임명됐다. 곧이어 김정은 제1비서가 '공화국 원수'에 추대됨으로써 공식 승계 절차를 마무리했다. 김정은이 공화국 원수 칭호를 수여받은 것은 당연한 수순이지만 리영호의 갑작스러운 실각은 북한 권부의 이상 조짐으로 볼 수밖에 없다.
당 중심 통치로 비대해진 군부 견제
북한 당국이 리영호의 해임 이유를 '신병 관계'라고 밝혔지만 정치국 회의에서 '조직 문제가 취급됐다'고 밝힘으로써 리영호가 숙청됐음을 시사했다. 북한의 입장을 대변하는 조총련 기관지 조선신보는 지난 19일 리영호 해임에 대해 '정상적인 당권 행사'라고 밝혔다. 이 신문은 "군대 안에는 당의 방침과 결정ㆍ지시를 무조건 집행하는 규률만이 인정되고 있다"며 '당의 유일적 영도체계'를 강조했다. 이는 리영호가 당의 방침에 어긋나는 비위를 저질렀음을 간접적으로 시사하는 것이다.
결국 리영호 해임은 김정일 시대의 선군(先軍ㆍ군 우선)정치로 과대 성장한 군부에 대한 군살 빼기와 세대 교체로 볼 수 있을 것이다. 김정은 체제는 당-국가 체제를 복원하고 군부가 수행하던 외화벌이 사업을 내각으로 옮기는 등 내각 중심의 경제 발전 전략을 구체화해나가고 있다. 김정은이 당과 내각 중심의 통치 행보를 보이자 리영호 등 군부가 반발했거나 직무를 태만히 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리영호 해임은 과대 성장한 북한 군부에 대한 당의 통제를 강화하겠다는 경고 메시지를 담고 있다.
김정일은 당을 '노인당' '송장당'이라고 비판하며 신뢰하지 않고 국방위원회를 중심으로 직할 통치 체제를 운영했다. 사회주의 붕괴와 김일성 사망 이후의 위기를 해쳐나가기 위해 김정일은 선군정치를 기본 통치 방식으로 내세우고 군을 앞세워 체제 수호와 경제 건설을 동시에 달성하고자 했다. 하지만 군을 앞세운 강성대국 건설 전략은 성공하지 못했고 군의 사회 통제 등 부작용이 나타났다. 과대 성장한 군부가 김정은 체제의 정책적 자율성을 제한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김정일도 김정은으로의 후계를 공식화하는 과정에서 당의 역할을 다시 강조했다.
김정은은 국가 헌법에 '핵 보유국'임을 명문화하고 "이제 군사강국을 이뤘으니 경제강국으로 나가야 한다"는 경제 우선주의를 표방하고 나섰다. 김정은은 '4ㆍ15 연설'에서 "우리 인민이 다시는 허리띠를 조이지 않게 하며 사회주의 부귀영화를 마음껏 누리게 하자는 것이 우리 당의 확고한 결심입니다"라고 밝혔다. 김정은은 인민생활 향상에 국정의 최우선 순위를 둬 군에 대한 자원 배분을 줄이고 당과 내각 중심의 경제 발전 전략을 준비 중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달 11일자 조선신보는 김정은이 "경제의 지식화가 촉진되는 세계의 추세에 맞게 인민을 잘살게 할 수 있는 우리식(북한식)의 발전 목표와 전략ㆍ전술을 이미 세워놓았다"고 전했다.
개혁·개방 신호탄? 정권 몰락 징후?
김정은은 '세계적 추세'를 강조하면서 인민생활 향상에 도움이 된다면 '다른 나라들의 선진적이며 발전된 것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자세를 보이고 있다. 자본주의를 몸으로 체험한 김정은이 과감한 경제 발전 노선을 공식화할 날이 머지않아 보인다. 리영호 해임이 개혁ㆍ개방 본격화의 신호탄인지, 김정은 정권 몰락의 징후인지는 두고 보면 알 수 있다.
그런데 리영호 해임에 대해 "노을을 보고 해가 지는 것을 알 수 있듯이 여러 상황을 보면 통일은 머지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고 말하는 이명박 대통령의 정세 인식의 근거가 무엇인지 궁금하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