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날 수밖에 없는 사람들
뜻밖의 눈물이었다. 인터뷰를 시작하자마자 제니스카페 대표 강소라(58) 씨의 눈에서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카페를 운영한 13년의 세월. 강 씨에겐 너무나 힘겨운 시간이었다. 건물 한 채 없는, 그래서 천정부지로 치솟는 임대료와 보증금에 계약 갱신 기간만 다가오면 밤 잠을 설쳐야만 하는 상가 세입자라는 게 죄라면 죄였다.
◇‘홍대 앞’ 부흥의 주역 ‘카페 제니스’
홍대 앞 터줏대감으로 통했던 강 씨. 그는 2002년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7평 남짓한 카페 공간에서 꿈을 키우기 시작했다. 2.5평의 주방에서 할 수 있는 건 다했다. 이탈리안 샌드위치와 와인의 뛰어난 마리아주(조합)로 유명세를 탔고 한때 ‘홍대 3대 카페’로 불렸다. 그러나 같은 자리에서 4년 이상 장사하기는 쉽지 않았다. 2006년에는 서울 마포구 창전동, 2007년 서교동, 지난해에는 연희동으로 자리를 옮겼다. 문제는 가게를 두 번이나 옮기면서 권리금은 단 한번도 받지 못했다는 것. 계약 만료 전 새로운 세입자를 구해 와도 한 건물주는 임대차보호 기간(5년)이 지나 권리금을 줄 이유가 없다고 했다. 이후엔 건물주 가족이 직접 가게를 오픈할 예정이라 세입자를 받을 수 없다고 하는 바람에 권리금을 받지 못했다. 제니스 카페가 손님을 끌어모은 덕분에 주변 상권이 발달했고 권리금도 뛰었지만 그에 대한 권리를 요구한 순간 강 씨는 ‘세상 물정 모르는 세입자’가 되고 말았다.
떠나는 상인 사라지는 홍대 문화
아기자기한 카페들이 모여있는 상수동 카페거리. 이곳엔 예술가들의 대표적인 아지트로 꼽히는 이리카페가 있다. 10여년 전 이리카페의 대표 김상우 씨는 폭넓게 예술을 즐기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모여 친분을 나누는 공간을 만들겠다는 생각으로 서교동에 이리카페를 오픈했다. 김 씨의 뜻대로 창업 5년만에 이리카페는 서교동 내 예술가들의 교류의 장으로 자리를 잡았다. 그러나 이리카페가 입소문을 타고 찾는 사람이 많아지자 임대인은 첫 계약 당시보다 5배 높은 임대료를 요구했고 받아들이지 못 한다면 이전하라고 요구했다. 김 씨는 결국 5년간 그의 땀과 열정이 밴 서교동 점포를 떠나 지금의 상수동 점포로 옮겼다.
그의 노력으로 터전을 옮긴 이후에도 이리카페는 옛 명성을 이어가고 있지만 그의 불안감은 여전하다. 그의 카페가 사람들을 모을수록 임대료는 올라가고 또 다시 가게를 이전해야 하는 상황에 놓일 수 있다는 생각 때문이다. 그가 가장 두려운 것은 “홍대 앞 가게들이 문을 다는 사이클이 갈수록 짧아지고 있다”는 것이다.
◇무용지물 임대차보호법
2009년 홍대 인근에 닭갈비 전문점 ‘참숯 만난 닭갈비’를 오픈한 최선재 씨는 창업 5년만인 지난해 2월 건물주로부터 가게를 비우라는 통보를 받았다. 임차보호기간이 끝났다는 이유에서다. 상가건물임대차보호법에 따르면 임차인은 5년의 영업기간과 권리금 회수를 보장받는다. 입주 당시 최 씨가 계약한 월 임대료는 250만원. 권리금과 보증금으로 각각 1억2,000만원, 4,000만원씩 총 1억6,000만원의 거금을 투자했다. 권리금이 1억원을 넘었지만 시설투자비까지 추가로 들었다.
초기 창업 비용은 부담이 컸지만 노력하는 만큼 손님들이 몰렸다. 최 씨는 “홍대 입구 중심가에서 벗어난 위치라 원래 장사가 잘 안 되는 지역이었지만 열심히 하면 좋은 성과가 있을 것이라는 믿음으로 최선의 노력을 다했다”고 회상했다.
문제는 늘어나는 손님 수 만큼 임대료도 크게 올랐다는 것. 3년이 지난 2012년, 건물주는 월 임대료를 230만원에서 280만원으로 인상한다고 통보했다. 종전 월세보다 20% 오른 금액이었다. 임대차보호법에 따르면 환산보증금 4억원(서울 기준) 이하 점포는 임대료 상승률이 9%로 제한된다. 지나친 임대료 상승을 막기 위한 목적이다. 법에 따르면 건물주의 요구 자체가 불법이었던 셈이다.
하지만 최 씨는 건물주의 요구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임대료 인상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내쫓으면 그만’이라는 식의 태도 때문이었다. 부동산 정보업체인 부동산114에 따르면 지난 6월말 홍대 상권의 월 임대료는 2011년보다 무려 58.9%나 올랐다. 대부분의 임차인들은 임대료 상승률 제한폭이 있다는 사실 조차 모르거나 법을 알더라도 권리를 주장하지 못 하는 게 실정이다.
<그래프>
이후에도 최 씨는 단 한번의 연체 없이 월세를 냈지만 끝내 그에게 돌아온 것은 퇴거 명령이었다.
현재 최 씨는 당시 건물주를 상대로 소송을 진행 중이다. 최 씨는 지난해 10월 1심에서 패소했다. 최 씨는 “나 말고도 주변 여러 상가에서 임차인들이 건물주를 상대로 소송을 진행 중”이라면서 “하지만 승소한 사례는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뜨는동네=떠나야만하는 동네
‘뜨는 동네’를 다른 말로 표현하면 임대료가 급등하는 곳, 그래서 남의 건물에 세 들어 장사하는 이들이 더 이상 발 붙이기 어려워지는 곳이다. 서울 서대문구 상수동, 창전동, 연남동 일대 뜨는 상권으로 꼽히는 ‘홍대 앞’이 그렇다.
마포구가 지난해 발간한 ‘홍대 앞 이야기’에 따르면 홍대 앞은 약 35년전 홍익대학교가 미술특성화 대학으로 지정되면서 ‘인디문화의 산실’ ‘젊은 예술가들의 둥지’ ‘문화공작소’로 발달되기 시작했다. 공방과 작업실에 더해 라이브클럽과 소호(소자본점포)가 자리잡으며 홍대만의 독특한 문화가 만들어졌다. 소위 말하는 ‘홍대 앞’은 점점 더 확장되고 있다. 서교동, 동교동, 연남동, 상수동, 합정동까지 ‘힙’한 가게들이 자리잡았고 강서권을 대표하는 상권으로 입지를 굳혔다. 하지만 이처럼 확장되는 상권의 배경에는 앞서 밝힌 대로 천정부지로 치솟는 임대료가 있다. 임대 비용을 줄이려고 비교적 월세와 권리금 부담이 적은 인근 지역으로 가게를 옮기는 소상인들이 늘어나는 탓이다.
이런 우리나라의 임차인들의 현실은 해외 사례들과 극명히 대비된다. 독일, 프랑스, 일본을 비롯한 OECD 국가에선 임차인들이 시설투자비와 영업비용을 회수할 수 있도록 영업기간을 장기간 보장하고 있다. 실제로 이들 국가들의 보장기간은 9년에서 15년 사이다. 또 임차인들이 법정 보호기간 이전에 계약을 만료해야 하는 상황에 놓이더라도 임차인들의 재산상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는 법적 장치도 마련해 놓았다. 앞서 예로 든 국가들은 임차인이 임대인의 재건축, 개축 요구로 퇴거하는 경우 시설투자비와 영업비용을 포함한 퇴거 보상액을 임차인에게 의무 지급하도록 하고 있다.
한편 우리나라의 임대차보호기간은 5년으로 설정돼 있다. 이는 임차인의 시설투자비와 영업비용을 회수하는데 턱없이 부족한 기간이라는 게 소상인들의 주장이다. 특히 임대료 증가율 상한선인 9%(서울 기준 환산보증료 4억원 미만) 마저 제대로 지켜지지 않아 임차인들은 계약 때마다 천정부지로 치솟는 임대료에 고통만 받다 5년도 채우지 못하고 쫓겨나는 현실에 놓여있다.
일본의 임대차계약법인 차지차가법은 임대료 증액이 임차인과 임대인의 합의에서만 가능하다고 규정하고 있다. 임차인이 끝내 임대료 인상을 거부해 소송까지 가더라도 판결이 나올 때까지 임차인은 기존 임대료 만큼만 내면 된다. 일본에 수 십 년 내지 100년 이상 영업하는 장수가게가 유독 많은 이유 역시 임대인의 재산권 못지않게 임차인의 생활안정권을 중요시하는 사회적 인식과 발달된 임대차보호법 덕분이었다.
결국 인디문화를 선도했던 ‘홍대’가 이를 일궈냈던 상인들의 무덤이 된 데는 일부 건물주의 ‘횡포’ 뿐만 아니라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 법안들이 자리하고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경기대학교 김기수 교수는 “5년에 불과한 임차 보호 기간을 현실에 맞게 늘려줄 필요가 있다”면서도 “5년의 보호기간마저 제대로 지켜지지 않는 경우가 많다는 게 더 큰 문제인 만큼 이를 방지할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서은영기자, 정수현·이홍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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