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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ulture&Life] 영화 '국제시장'으로 5년 만에 컴백 윤제균 감독

"평범하지만 위대한 사람들 영화로 찍는 게 가장 자신있죠"




10년뒤도 예측할 수 없는 게 인생… 지금은 비록 아무 것도 아니지만
소중한 가치 지키려 싸워나가는 '위대한 사람' 삶 전하려 노력할 것
아버지 세대 이야기에 진정성 담아 처음으로 내가 찍고싶은 영화 제작
6·25서 1980년대 사건까지 다뤄 정치적 시각으로 해석 말아줬으면…


한국 영화계에서 윤제균(사진) 감독만큼 평가가 엇갈리는 인물이 또 있을까. 한국 영화 역사상 8개밖에 나오지 않은 1,000만 관객 동원 감독이지만 비평 면에서는 다른 상업영화 감독과 비교해서도 유독 박한 평가를 받아 왔다. 투자자들에게는 '어떻게 영화를 찍으면 관객을 사로잡을 수 있을지를 아는 감독'이라는 평가와 함께 러브콜을 받지만 관객들을 웃기고 울리는 그의 감수성은 '노골적인 신파'나 '억지 감정'이라는 식으로 폄훼돼왔다. 하지만 그의 신작 '국제시장'을 바라보는 분위기는 사뭇 다르다. 개봉 전부터 '9번째 1,000만 영화'를 예감하는 목소리가 곳곳에서 들렸다. 흥행이야 그의 주특기니까 그러려니 해도 이번에는 비평가들마저 사로잡았다는 후문이다. 이야기에 몇 가지 단점들이 발견되기는 하지만 '잘 만든' 영화라는 것에는 이견이 없다. '국제시장'은 세계 3대 영화제인 베를린국제영화제의 2015년 '파노라마 섹션'에 공식 초청되기까지 했다. 윤 감독의 작품이 세계 영화제에 초청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번 영화는 무엇이 달랐던 걸까. 굳이 단어로 표현하자면 '진정성'이지 않을까. 전작들에 진정성이 없다는 것은 아니지만 이번에는 절실함의 정도가 달랐다. 감독은 "지금까지는 관객들이 보고 싶을 것 같은 영화를 찍었지만 이번에는 처음으로 내가 만들고 싶었던 영화를 만들었다"며 "이 영화는 (나의) 개인적인 영화"라고까지 표현했다. '국제시장' 속 덕수와 영자라는 캐릭터의 이름은 감독 부모님의 실제 이름이기도 하다.

"영화 마지막에 덕수가 아버지의 사진을 보며 '이만하면 저 잘살았지 않았나요. 근데 저도 참 힘들었어요'라고 토로하는 부분이 있습니다. 이 장면 하나를 찍고 싶고 보여주고 싶어 영화를 만들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 일찍 돌아가신 제 아버지에게 정말 하고 싶었던 말이 바로 그 말이었기 때문입니다. 아버지가 돌아가시면서 여동생과 어머니 잘 보살펴야 한다고 당부하셨는데 보시기 어떠시냐, 열심히 일해서 지금까지는 아버지와의 약속 잘 지켜온 거 같은데 괜찮지 않나… 뭐, 그런 말들 말입니다."

실제 감독은 영화 시사회를 연 후 경남 창녕에 위치한 아버지의 산소에 다녀왔다고 했다. "특별히 드릴 말씀은 없었습니다. '많이 도와주세요, 보고 싶어요' 그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아버지에 대한 영화를 무사히 찍어냈고 상영하게 된 것이 조금 뿌듯했던 것 같긴 합니다."

소중한 이야기이기에 더욱 잘 만들어내고 싶었던 것이 그의 속내다. 이야기는 물론 영상·음악·캐스팅 모두에 공을 많이 들였다. 총 180억원이 투자돼 최소 600만명 이상의 관객이 들어야 손해를 보지 않는다.

"애초부터 스케일이 큰 영화를 찍으려고 한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한 세기를 관통한 가족의 이야기입니다. 시대 재현을 제대로 하고 싶었는데 현재 그 장소가 남아 있는 곳이 없으니 컴퓨터 그래픽의 도움도 많이 받아야 했고 전쟁 시퀀스가 필요하니 해외도 가야 했습니다. 좋은 장면을 만들고 싶다는 욕심이 커지다 보니 예산이 자꾸 늘어난 셈입니다."

특히 힘을 준 부분은 역시 '이야기'다. 2012년 시나리오 초고가 나온 후로부터도 꼬박 3년이 걸려 이야기가 다듬어졌다. "원래 시나리오에 사활을 거는 스타일입니다. 안 좋은 시나리오에서는 결코 좋은 영화가 나올 수 없다는 게 내 지론이기도 합니다. 특히 대중영화를 만들 때는 많은 이들의 공감을 얻을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수차례 모니터링해서 미흡한 부분을 고치고, 고치고, 또 고쳤습니다."

초고는 178쪽이 넘었는데 통상 상업영화의 시나리오가 70~80쪽 정도에 그치는 것을 보면 엄청난 분량인 셈이다. "초고에는 1990년대의 사건들도 포함돼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러려면 4~5시간짜리 영화를 찍어야 할 것 같아 일단 1980년대 초까지로 이야기를 잘랐습니다. 뒷부분은 영화 잘 되면 다시 찍자고(웃음)."

에피소드 선택의 기준은 무엇이었을까. "6·25와 이산가족 상봉은 덕수의 가족사에 있어 뿌리나 다름없으니 빼놓을 수가 없었고 나머지 파독 광부 삽화와 베트남전 파견의 에피소드는 고민 끝에 들어갔습니다." 특히 덕수가 베트남에 돈을 벌러 간 이야기는 마지막까지 고민을 거듭한 삽화다. "사실 중동 건설 현장에 관한 얘기를 꼭 넣고 싶었습니다. 주위에 중동 가셨다 오신 분들이 대단히 많기도 했고 중동에서 치열하게 산 이야기는 여전히 매력적이라고 생각하기에 지금도 조금 아쉽습니다. 하지만 베트남전의 경우 6·25와 비교해볼 수 있는 계기가 있다는 점에서 좀 더 특별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역지사지로 반추해야 하는 그런 역사라고 여겼기에 결국 이 삽화가 선택됐습니다."

물론 영화에 대한 평가가 마냥 호평 일색인 것은 아니다. 많은 사람이 볼수록 많은 반론이 나오기 마련. 특히 현대사라는 예민한 소재를 다루면서 정치적 담론들은 철저하게 배제해버린 탓에 오히려 다양한 정치적 해석을 부추기는 모양새다. 감독은 이런 결과를 원치도 않았을 뿐더러 아쉽기까지 하다고 토로했다.

"정치적이거나 사회 비판적, 또는 역사철학적인 시각으로 본다면 내 영화에는 부족한 부분들이 많이 있을 것이라는 점을 나도 잘 압니다. 하지만 그런 시각으로 본다면 이 영화가 가진 미덕 역시 하나도 보이지 않을 것입니다. 영화를 조금만 개인적이고 가족적인 시각과 편안한 마음으로 본다면 생각지도 못한 많은 것들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요."

감독의 당부도 이 지점과 맞닿아 있다. "그렇게 거창한 영화가 아닌 재밌는 가족영화"라고 강조한 감독은 "고생하신 부모님 세대에 고마운 마음으로 순수하게 만들어진 영화이지 좌든 우든 누구 편에 서서 이야기하려고 만든 영화가 아니다. 좌든 우든 부모님은 모두 다 있지 않은가. 어느 쪽도 정치적 이용은 절대로 피해 주기를 부탁하고 싶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런 논쟁들마저도 흥행의 청신호로 보는 시선들이 많다. 이번 영화까지 성공한다면 '흥행감독'이라는 그의 명성은 더욱 공고해지리라. 감독 자신은 본인의 영화가 대중들에 인기를 끄는 이유가 무엇이라 생각할까. 감독은 "나의 이야기가 대중과 공감하기 때문이 아닐까"라고 조심스레 말했다. "나는 영화를 만들 때 기획 단계에서부터 사람들이 무엇을 보고 싶을까를 생각하고 접근하는 것 같습니다. 나는 만들고 싶은 영화를 만드는 게 아니라 보고 싶은 영화를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쪽인데 내가 평범한 대중의 한 사람이다 보니 시각 자체가 대중적인 것 같습니다. 혹자는 내게 관객을 울리려고 애를 쓰는 것 같다고 하지만 그건 절대 아닙니다. 울리자고 마음먹어서 울릴 수 있다면 그건 진짜 천재인데 나는 그런 실력이 없습니다. 영화를 보면서 울고 웃었다면 그건 감정이입이 됐다는 것이고 공감을 했다는 게 아닐까요."

하나의 이유를 더 꼽자면 윤 감독이 사람에 대해 갖는 깊은 애정이 영화 속에서 묻어나오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언제나 생각하는 것이 '사람의 인생은 아무도 모른다'는 것입니다. 누군가의 10년 뒤의 모습은 아무도 예측할 수 없기에 지금 처한 상황만 보고 사람을 판단하는 것은 정말 어리석은 행동이라고 생각합니다. 이건 내 삶에서 비롯된 생각입니다. 나는 샐러리맨을 하다가 영화 일을 하게 됐고 아현동 10평 반지하 단칸방에 살다가 지금은 속된 말로 흥행감독이 됐습니다. 누가 나의 삶을 예측했을까요."

그렇기에 감독은 항상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에 끌린다고 했다. 지금은 비록 아무것도 아니지만 소중한 가치를 지키기 위해서라면 언제든지 위대해질 수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 감독은 앞으로도 이들의 이야기를 전하려는 노력을 계속할 것 같다고 말했다. "상류층이나 태어날 때부터 영웅이었던 사람들의 이야기에는 마음이 가지 않고 잘할 자신도 없습니다. 나는 언제나 평범한 사람들이 가장 위대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 이야기들이야말로 윤제균이라는 사람이 가장 잘할 수 있는 이야기인 것 같습니다."

He is…

△1969년 부산

△1988년 부산 사직고 졸업

△1996년 고려대 경제학과 졸업

△1999년 '신혼여행' 각본으로 태창흥업 주최

시나리오 공모전 대상 수상



△2001년 '두사부일체' 연출·각본

△2002년 '도둑맞곤 못살아' 각본, '색즉시공' 제작·기획·연출·각본

△2003년 '첫사랑 사수궐기대회' 공동각색, '낭만자객' 각본·제작·감독

△2005년 '내 생애 가장 아름다운 일주일', '간큰가족' 제작

△2007년 '1번가의 기적' 제작·연출

△2009년 '해운대' 제작·연출·각본, '시크릿' 제작, '하모니' 제작·공동각본, 제12회 디렉터스컷 어워드 올해의 제작자상

△2010년 '내 깡패같은 애인' 제작, 제18회 부일영화상 각본상·최우수 감독상, 제1회 서울문화예술대상 영화감독부문 대상, 제46회 대종상 영화제 기획상, 제46회 백상예술대상 영화부문 대상, 제3회 한국문화산업대상 개인부문

△2011년 '퀵' 제작·각색, '7광구' 제작·공동각본

△2012년 '댄싱퀸' 제작·각색

△2013년 '스파이' 제작·각색

△2014년 '국제시장' 연출



현대사에 반추된 아버지의 삶… 눈물의 카타르시스 주다

영화 '국제시장' 리뷰

덕수(황정민)의 꿈은 선장이었다. 그러나 그 꿈은 결국 이뤄지지 못했다. 기회가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그저 가족의 생계를 위해 또는 남동생의 대학 진학과 여동생의 결혼자금 마련을 위해 매번 조금씩 뒤로 미뤘을 뿐이었다. 그렇게 수십 년이 흐른 후 꿈을 이루기에는 육체적으로 불가능해진 나이가 돼서야 덕수는 오랫동안 품어왔던 꿈에 대해 말한다. 영자(김윤진)는 "왜 이제껏 말을 하지 않았느냐"고 묻지만 덕수는 대답이 없다. 하지만 우리는 모두 영화 속 생략된 그 대답이 짐작이 간다. "뭐, 그런 시대였지 않았냐. 나는 괜찮다"는 대답일 것이라고 말이다.

영화 '국제시장'이 다루는 이야기는 전혀 새롭지 않다. 힘든 시대를 살아가는 가족을 위해 자신을 희생해온 아버지의 이야기라니. 오히려 너무 상투적이다. 길을 가는 아무 할아버지 한 명을 붙잡고 물어도 영화보다 훨씬 구구절절한 스토리들이 흘러넘칠 텐데 어떻게 이야기를 풀어갈 셈인지 궁금해질 지경이었다.

윤제균 감독이 선택한 방법은 의외로 정면승부였다. 감독은 이른바 1950~1980년대를 온몸으로 살아왔던 이들의 기억 속에 가장 큰 상흔을 남겼던 굵직한 사건들을 영화 속으로 불러와 연대순으로 나열한다. 덕수를 통해 읊어지는 한국의 현대사는 눈물겹다는 말로밖에 표현이 안 된다. 함경남도 흥남에 살았던 어린 덕수는 1950년 중공군의 공세로 삶의 터전을 떠나 부산으로 피난을 가는 과정에서 아버지, 막내 여동생과 생이별을 하고 청년 덕수는 동생의 대학 등록금 마련을 위해 독일로 가 광부가 된다. 중년이 된 덕수는 여동생의 결혼자금 마련을 위해 다시 베트남 전쟁터로 떠나 수난을 겪고 이산가족 상봉 프로그램을 통해 흥남부두 철수 당시 헤어진 가족과 재회하며 평생의 한을 풀기도 한다.

영화는 잘 만들어진 대중 상업영화가 줄 수 있는 거의 모든 것을 다 준다. 실제 이야기 그 자체로도 슬픔을 자아내는 일화들은 정교한 극적 구성 아래 눈물의 카타르시스를 주고 군데군데 심어놓은 코믹한 요소들은 한국 현대사라는 소재가 주는 무게감을 중화시켜준다. 큰 비용을 들여 구현해낸 화려한 볼거리는 할리우드 영화 못지않으며 배우들의 연기도 훌륭하다. '1만원으로 즐기는 최상의 엔터테인먼트'라고 부르기에 손색이 없다. 다만 감독의 전작들과 마찬가지로 지나치게 상업적이고 익숙한 코드를 답습한다는 점은 여전히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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