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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경이 만난 사람] 조석 한국수력원자력 사장

"후쿠시마 사고 후 56개 대책에 1조 투입… 원전 안전 최선"

해안방벽 10m로 높이고 이동형 발전차 개발해 전국에 모두 배치

안정적 전력공급 방안 원전밖에 없어… 5~6기 추가건설 불가피

본사 실·처장 40% 외부출신 영입 등 원전 마피아 논란 해소할 것



조석 한국수력원자력 사장이 어린이날에 임직원 자녀 4,000여명에게 편지를 보낸 뒤 아이들이 조 사장에게 답한 편지들이 수북하게 쌓여 있다.
/사진제공=한수원

지난해 한국수력원자력 직원들은 출퇴근 때 입고 다니던 '회사 점퍼'를 장롱 속에 넣어뒀다. 원전과 관련한 부품 시험성적서 위조 파문으로 국민의 신뢰가 바닥까지 떨어졌고 한수원이 '원전 마피아'의 집단으로 지목된 탓이다. 책임을 지고 당시 한수원 사장은 물러났다. 후임 대표이사(CEO)를 찾기는 쉽지 않았다. '아무리 잘해도 손가락질을 받을 수 있다'는 우려감이 작용한 것으로 보였다. 이런 상황에서 한수원을 짊어진 게 조석(사진) 사장이다. 정부는 에너지 분야에서 많은 경험을 갖고 있는 조 사장이 '해결사'가 돼주기를 원했고 조 사장 역시 '부담은 됐지만 관료 특유의 소명의식'이 발현됐다. 조 사장은 "조직이 무너지는 것은 순식간이지만 회복하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리더라"며 "지난해 중단됐던 발전소 3기가 정상적으로 가동되는 등 이제야 외형적으로는 어느 정도 정상궤도에 오른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한수원에 다닌다는 데 상당한 자부심을 갖고 있는 직원들이 많았다. 우리나라에서 필요한 전력의 상당수를 공급한다는 데 대한 자부심이었다"면서 "그래서인지 1만명에 육박하는 한수원 임직원들은 지난 2013년을 '치욕의 해'로 기억하고 있는데 그런 것이 적폐를 해소하고 한수원이 새롭게 거듭나는 힘이 되고 있다"고 강조했다. 조 사장은 단지 과거의 적폐를 없애고 조직을 안정시키는 데만 초점을 두고 있지 않았다. 최근 서울 삼성동 집무실에서 1시간가량 진행된 인터뷰에서 조 사장은 조직이 안정화되면 한수원이 보유한 세계적 수준의 수력·양수발전 기술을 아프리카 등으로 수출하겠다는 청사진도 내놓았다. 다만 당장은 원전의 안전에 최선을 다한다는 계획이다.

조 사장은 원전 안전의 중요성을 거듭 강조했다. 세월호 참사를 계기로 원전에 대한 국민들의 불안심리가 커지고 있는 것에 강한 긴장감을 느끼고 있는 것도 감지됐다. 불똥이 원전으로 튈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조 사장은 원전 안전을 위해 많은 조치를 취했다는 설명을 하면서 원전이 노후화해 안전하지 못하다는 것은 잘못된 인식이라고 분명한 선을 그었다. "우리가 운영하는 원전 중 가장 오래된 게 고리 1호기입니다. 그런데 1호기 가동일지를 보면 가동 이후 최초 10년간 일어난 고장사고가 전체의 80%에 달합니다. 실제로 2010년 원자력안전위원회의 안전성 검사와 설비투자 이후 일어난 고장은 6건 정도에 불과합니다. 사람으로 치면 열 살까지 이런저런 사고가 많이 나고 서른일곱 살까지는 오히려 사고가 적었던 것이지요."

전문가들 역시 원전의 '설계수명'과 내구성이 반드시 일치하는 것은 아니라고 입을 모은다. 고리 1호기의 경우 설계수명은 30년이지만 충분한 부품교체와 투자만 이뤄진다면 안전하게 더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문제는 비용. 원전마다 차이는 있지만 10년을 연장할 때 들어가는 비용이 약 6,000억~7,000억원에 달한다. 조 사장은 "오는 2017년이 되면 고리 1호기 사용 연장을 두고 논란이 일 것으로 보인다"며 "안전성은 돈을 더 추가하면 확보할 수 있지만 이 같은 투자가 경제성이 있을지는 따져봐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안전수명에 대한 논란과 별개로 한수원은 원전에 대한 투자를 끊임없이 늘리고 있다. 동일본 대지진 이후 원전 주변의 해안방벽을 모두 10m 이상으로 높게 쌓아올렸고 최근에는 이동형 발전차를 전국 원전본부에 모두 배치했다. 뜻하지 않은 사고가 발생하더라도 내부 전력공급의 안전성은 확보될 수 있도록 조치한 것이다. 이로써 원전의 전력계통은 △한전으로부터 전력을 공급 받는 수전선로 △비상디젤발전기 △대체교류비상발전기 △이동형 발전차 등 4중의 안전 시스템을 갖추게 됐다. 조 사장은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56가지의 안전대책을 세워 총 1조1,000억원의 비용을 투입했다"며 "이런 비용은 발전단가에 포함되지 않아 경영에 부담이 되지만 안전을 위해서라면 투자비용을 더 늘릴 수 있다"고 강조했다.

안전 강화 드라이브는 세월호 참사 이후 더욱 속도를 내고 있다. 한수원은 4월24일부터 한 달 동안 전 원전본부 및 수력·양수발전소를 대상으로 현장점검을 실시했으며, 특히 원전에 대해서는 외부전문가 자문과 국제기구의 안전점검 수검, 재난관리 세미나 등을 잇달아 진행했다. 조 사장은 "안전이 없는 혁신은 무의미하다는 것에 전 직원이 공감하고 있다"며 "모든 사고 가능성을 대비해 시뮬레이션을 하고 만에 하나에 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원전은 전체 수요 전력의 28%를 담당하고 있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원전의 비중을 줄여야 한다는 의견이 많지만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전세계적으로도 원전의 비중을 줄이겠다고 결정을 내린 뒤 실천하고 있는 곳은 드물다. 그만큼 원전 이외의 대안을 찾기 힘들다는 얘기다.

조 사장은 "논란은 있지만 현재 전력을 안정적으로 공급할 수 있는 대안은 원전밖에 없는 게 현실"이라며 "발전단가를 확 높이더라도 안전성을 확보하는 방향으로 가는 게 옳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정부는 올해 초 '2차 국가에너지 기본계획'을 통해 2035년까지 원전의 설비비중을 29% 수준으로 확정했는데 이를 충족시키기 위해서는 5~6기의 원전 추가 건설이 불가피한 실정이다. '발전단가는 낮지만 원전 유지비용·해체비용 등을 감안할 때 절대 싼 게 아니다'라는 일부의 지적에 대해서는 세 가지 측면에서 반박했다. "원전은 ㎾h당 39원의 단가가 들어가는데 39원에는 해체비용이 포함돼 있습니다. 또 해체비용은 6,000억원가량 이미 조성해놓았는데 이는 세계 평균 수준에 맞춰 있습니다. 사용 후 핵연료 처리비용 역시 따로 적립하고 있기 때문에 원전의 발전단가가 실제는 높다는 주장은 허위입니다." 다만 이슈가 된 '원전 안전' 강화를 위해서는 더 투자해야 하지만 그렇다고 전력거래소에 생산전력을 보다 비싸게 팔 수는 없다고 했다. 조 사장은 "소비자에게 비용을 떠넘길 수 없다"면서 "당장은 한수원이 충당할 수 있는 만큼 할 수 있는 데까지 한수원이 자체 비용으로 안전강화에 최선의 준비를 할 것"이라고 전했다.

한수원의 가장 큰 화두가 안전이라면 두 번째 강조점은 역시 조직혁신이다. 조 사장은 이에 대해 내부에서 시작되는 자발적 혁신이 정답이 될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밖에서 시켜서 하는 변화에는 분명한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는 뜻이다. "지난해 한수원에 오면서 윤리의식·정도경영 측면에서 부족함이 있다는 지적을 많이 들었는데 정부가 관련 대책을 많이 내놓아 제도적으로는 어느 정도 대비가 된 것 같습니다. 하지만 우리 스스로 바꾸겠다는 각오나 의지 측면에서는 아직 할 일이 많아요." 실제로 한수원은 지난해 부품구매와 관련한 비리 발생 가능성을 원천적으로 차단하기 위해 구매사업단의 전문성을 높이는 한편 감사실의 기능을 확대하고 회사 내부적인 위상을 강화하는 조치를 단행했다. 또한 납품회사가 제시한 가격을 검증 없이 그대로 받아들이는 과정에서 비리의 원인이 발생했다고 보고 자체적으로 원가를 조사하는 조직도 신설했다.

그는 "특수 분야인 원자력의 특성상 '순혈주의'가 있었던 게 사실"이라며 "외부인사를 적극적으로 영입하고 융합인사를 단행하는 등 조직·인사·문화를 동시에 바꾸는 운동을 진행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한수원은 본사 처·실장의 40%인 13명이 외부 출신이다. 동시에 기술직과 행정직의 교차를 위해 고리본부장의 경우 사무직 출신을 보내기도 했다. 조 사장은 "현장 본부장이 반드시 기술자여야 한다는 법은 없다. 섞어보고 하는 게 인사혁신인데 현재까지는 괜찮다"고 말했다.

내부혁신에 대한 직원들의 자발적 호응을 이끌어내기 위한 현장경영에도 박차를 가하고 있다. 취임 8개월 만에 전국의 발전소를 세 바퀴나 돌았다. 처음에는 조 사장을 어색해하던 직원들도 이제는 스스럼없이 애로사항을 밝힐 정도로 관계가 편해졌다고 한다. 그는 "어떤 논란이 있든 원자력은 대한민국 산업의 핵심 인프라이고 이를 안전하게 운영하는 게 우리의 국가적 책무"라며 "직원들의 사기를 진작시키면서도 동시에 적정 수준의 긴장을 유지하도록 하는 게 최고경영자의 본분"이라고 강조했다.

다만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공공기관 정상화는 조 사장에게도 부담스러운 숙제다. 한수원의 각종 복지혜택을 줄일 것을 정부가 요구하고 있어 직원들 사이에서 반발의 목소리가 나온다. 기획재정부는 공공기관 정상화를 제대로 이행하지 못하는 CEO는 올해 안에 옷을 벗기겠다는 입장이다. 투명사회를 위한 정보공개센터에 따르면 한수원은 지난해 직원 자녀의 대학교 학자금으로 총 93억원을 지급했으며 결혼할 경우 본인에게 200만원을 줘 도마 위에 올랐다. 이 난제에 대해 그는 "국민들이 한수원을 방만하게 보는 측면이 있다면 국민들의 눈높이에서 이 문제를 풀어내고 싶다"며 "노사협의를 이끌어내기 위해 최대한 노력하겠다"고 각오를 내비쳤다.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관피아(관료+마피아)' 문제에 대해 조 사장은 공무원 출신이라는 게 '주홍글씨'가 되는 일은 없어야 하지 않겠느냐는 조심스러운 답변을 내놓았다. 조 사장은 지식경제부 차관을 지낸 정통관료 출신이다. 그는 "요즘 같은 때에 의견을 밝히기 부담스러운 면이 있다"면서도 "어떤 인물이 어디 출신이냐보다 어떤 능력을 가지고 있느냐, 이것이 더 중요한 문제이고 하나의 공직자를 국가가 30년 이상 키워냈다면 이런 인물을 무조건 배제하는 게 반드시 옳은 일인지 짚어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관피아라는 꼬리표를 떼고 실적으로 인정받겠다는 자신감의 표현으로 읽혔다.

사진=권욱기자











He is …



△1957년 전북 익산 △1976년 전주고 △1981년 서울대 외교학과 학사 △1997년 미국 미주리주립대 경제학 석사, 경희대 경제학 박사 △1981년 행정고등고시 합격 △1998년 대통령비서실 행정관 △2001년 산업자원부 총무과장 △2004년 산업자원부 원전사업기획단장 △2006년 산업자원부 생활산업국장 △2006년 지식경제부 자원정책심의관·에너지정책기획관 △2008년 지식경제부 산업경제정책관 △2009년 지식경제부 성장동력실장 △2011년 한국산업단지공단 이사장 △2012년 지식경제부 2차관 △2013년~ 한국수력원자력 사장













임직원 자녀와 편지 주고받는 '열린 CEO'

■ 조 사장은

서일범기자

관(官)에 몸담고 있던 시절 조석 한국수력원자력 사장은 업무장악 능력, 소위 '그립'이 강한 것으로 이름을 떨쳤다. 싱글벙글 웃다가도 한 번 질책을 시작하면 부하 직원들이 오금을 저릴 정도였다고 한다. 산업통상자원부의 한 국장급 간부는 "감각이 영민해 적기에 꼭 필요한 대책을 내놓았다"고 술회했다. 지난 2005년 경주 방사물폐기장 부지 선정 등이 그의 '작품'으로 꼽힌다.

직원 1만여명을 통솔하는 최고경영자(CEO)가 된 지금 조 사장은 업무장악 능력에 '소통'을 더했다. 상명하달(上命下達)식 업무 체계로는 조직혁신을 이끌어낼 수 없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소통을 위해 떠올린 아이디어가 다름 아닌 편지다. 각종 원전 비리 등으로 처진 직원들의 어깨에 다시 한 번 자긍심을 불어넣고 싶었다. 지난 어린이날을 맞아 직원 가족 어린이 4,000여명에게 편지를 보냈다. 여러분의 부모님 덕에 회사가 나날이 발전하고 있고 그런 부모님이 무척 자랑스럽다는 내용을 담았다. 5년 동안은 한 치도 자라지 않고 땅속에서 뿌리만 내리다가 6년째가 되면 하루에 70~80㎝씩 쑥쑥 자라난다는 모죽(毛竹)의 이야기도 들려줬다.

반응은 기대 밖으로 뜨거웠다. 수백 명의 어린이가 손편지와 메일 등을 통해 답장을 보내왔다. "다른 사람이 너희 아빠 무슨 직업이냐고 물어보면 떳떳하게 원자력 다니신다고 말합니다. 사장 아저씨의 편지처럼 저도 큰 사람이 될 수 있겠지요?(도예준 어린이" "아저씨가 왜 이 편지를 보냈는지 알 것 같아요. 우리의 전기를 만들고 또 행복을 만들어나가는 회사인 것 같아요. 또 즐거움을 함께 나누는 곳이에요. 사랑해요.(교리초등학교 1학년 김나희 어린이)" "사장 아저씨, 저는 우리 아빠와 함께 살고 싶어요. 사장 아저씨가 힘이 제일 세지요? 우리 아빠 대전에 보내주시면 더 착한 어린이가 될게요.(최혜림 어린이)" 등과 같은 내용의 편지가 쏟아져 들어왔다. 조 사장 역시 틈이 나는 대로 어린이들의 답장을 일일이 읽어보며 조직혁신의 의지를 되새긴다고 한다. 한수원의 한 관계자는 "어린이들이 보낸 답장을 직원들이 같이 보면서 아이들에게 자랑스러운 일터를 만들자는 소명의식이 더해졌다는 직원들이 많다"고 말했다.



/대담=이철균 경제부 차장 fusioncj@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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