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자재 가격이 올해 들어 급락하며 글로벌 경기 전망을 어둡게 만들고 있다. 중국을 비롯한 주요국 경기가 예상보다 부진한 것으로 드러나면서 대표적 원자재지수인 다우존스UBS원자재지수는 연초부터 23일(현지시간)까지 6.46%나 떨어졌다. 세계경기와 연관성이 큰 원자재 가격의 뚜렷한 하락세에 일각에서는 글로벌 디플레이션 우려까지 고개를 들고 있다.
원자재 가격은 이미 지난해부터 내리막을 타기 시작했지만, 안전자산으로 통하던 금값이 최근 폭락하면서 글로벌 경기 논란의 화두로 급부상했다. 금값은 지난 13일 하루 동안 9.1%나 폭락, 저지선이던 온스당 1,500달러 선을 단숨에 허물고 1,361.1달러에 장을 마감했다. 이후 소폭 반등했지만 23일 현재 금 가격은 지난해 고점과 비교해 22%나 하락한 상태다.
원유 가격도 주저앉았다. 북해산 브렌트유의 가격은 지난 22일 지난해 7월 이후 처음으로 배럴당 100달러 아래로 내려갔다. '닥터 코퍼'(Dr. Copper)라 불리며 세계경기를 예측하는 선행지표로 종종 활용되는 구리 가격은 2011년 2월에 기록한 최고점 대비 32%나 하락한 상태다.
원자재 가격의 하락은 유럽의 침체에 더해 미국과 중국의 경기 회복속도가 예상보다 부진한 데 따른 결과다. 특히 지난주 발표된 중국의 경제성장률이 예상치를 크게 밑돌면서 중국의 자원 수요가 위축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시장을 뒤흔들었다. 유로존 재정위기와 일본의 금융완화로 미 달러화가 강세를 보이는 것도 원자재 가격 하락 요인이다. 강달러는 특히 달러화 대체 수단으로 인식되는 금값에 타격이 컸다.
문제는 경기에 대한 우려가 촉발한 원자재 가격 약세가 다시 세계 경기의 발목을 잡는 악순환을 낳을 수 있다는 점이다. 미 경제전문지 포브스는 "구리 가격 하락은 글로벌 경기 후퇴를 반영하고, 금ㆍ귀금속 가격 하락은 디플레이션을 암시한다"고 지적했다. 앨런 부시 아처금융서비스 선임 애널리스트는 "금속 및 원유 등 산업 분야 원자재 값 하락은 각국 정부의 통화팽창 통한 경기부양을 상쇄하고도 남을 악영향을 줄 수 있다"고 말했다.
다만 시장의 분위기가 비관론 일색인 것은 아니다. 20년 이상 이어진 수퍼 사이클(장기적 가격 상승 추세)이 끝났다는 주장이 힘을 얻지만, '셰일 가스'로 대표되는 미국의 에너지 붐에 따른 경기 회복에 힘입어 원자재 수요가 다시 상승하리란 전망도 여전히 남아 있다. 금속거래 업체인 트랙시스의 마크 크리스토프 최고경영자(CEO)는 "미국의 설비 가동률이 80%를 넘길 것으로 예상될 만큼 시장에 활력이 있다"며 긍정적 전망을 고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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