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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뼈와 살이 타는 밤'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전시 제목은 1980년대 신군부가 추진한 이른바 '3S(Sex·Screen·Sports)정책'을 대표하는 영화죠. 당시 사회와 30여년이 지난 지금의 병든 사회가 비슷하다고 생각했어요. 달라진 게 있습니까?"
현대미술가 양아치(45·조성진·사진)가 되물었다. 15년째 빡빡머리를 고수하며 거지에 건들거리는 동네 청년을 지칭하는 '양아치'를 예명으로 사용하는 독특한 작가. 이름은 이래 봬도 속은 진지하다. 지난 2010년 에르메스미술상을 거머쥔 주목 받는 작가 중 하나다. 그는 5년 만에 여는 개인전이자 첫 상업화랑 개인전의 제목을 '뼈와 살이 타는 밤'으로 내세웠다. 1980년대 에로영화를 대표하는 이 제목은 개그 소재 등으로도 패러디될 정도로 당시 문화의 단면을 상징한다.
23일 서울 삼청로 학고재갤러리 전시장에서 만난 작가는 "시각적으로는 안정돼 있는 것 같지만 사실상 교묘한 통제가 이뤄지는 현시대의 모습이 30년 전과 크게 다르지 않다"며 "구체적으로 말할 수 있는 시각적인 것은 없지만 시스템적으로 녹아 있어 세월호 참사도 우연히 일어난 일이 아니라 결국 그 배경에는 시스템이 깔렸다"고 말했다. 높은 자살률과 스트레스 지수 역시 우리 사회의 현실을 방증한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전시 제목은 발칙하지만 속뜻은 진중하다 보니 전시장 분위기는 다소 음침하고 기괴하다. 입구에서 맨 먼저 만나는 '황금산'은 금박으로 뒤덮인 거대한 조형작품인데 "암흑 속에 살며 신세계를 기대하는 인간의 양면성"을 담고 있다. 금발의 기다란 머리카락을 늘어뜨린 설치작품 너머로는 어둠 속에서 찍은 사진들이 걸려 있다. 무당집이 따로 없다.
새하얀 다리 등 불확실한 신체 일부들이 어두운 산길에 놓여 있어 관객을 놀라게 하는가 하면 살았는지 죽었는지 알 수 없는 새(鳥)와 눈이 마주치기도 한다. 어두운 산속에는 죽어 있는 땅을 의미하는 망초가 무성하고 생명력을 상징하는 복숭아가 전시장 곳곳에 놓여 있다.
작가는 "'왜 여기에 이것들이 있는가'라는 의문에서 시작해 '왜 반복돼서는 안될 역사가 여전히 반복되고 있는가'라는 현실에 대한 물음을 던지게 됐다"며 "죽었다고 생각한 것이 살아 있고 살아야 하는 것이 죽었다"고 읊조렸다.
작품 속 새·복숭아·머리카락 등은 진짜가 아닌 박제된 가짜들이다. "대한민국 정치가 우울증에 걸려 곤란한 상황인데 작가 개인이 할 수 있는 게 없어서 참담했다"던 작가가 최대한 은유적으로 에둘러 표현한 '박제된 전시'인 셈이다. 오는 7월27일까지. (02)720-1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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