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9 재보선 결과에 대해 논란이 분분하다. 승리한 새누리당도, 패배한 새정치민주연합도 모두 조심스러운 태도를 보이고 있지만 결과에 대해서만은 당혹스럽다는 것이 일치된 반응이다. 예상과 정반대로 선거운동 막판에 터진 성완종 사건이라는 대형 악재에도 불구하고 여당인 새누리당은 압승했고 반사이익을 기대했던 새정연은 오히려 한 석도 건지지 못하며 완패했다.
이번 재보선은 30%대의 낮은 투표율과 불과 1년짜리 의석수 4곳의 선거이기 때문에 이 결과만으로 전체 민심을 반영했다고 볼 수 없다. 그러나 선거결과는 몇 가지 점에서 의미 있는 내용을 담고 있다. 내년 총선에 앞서 민심의 향방을 가늠할 수 있는 지표인데다 선거결과를 바탕으로 여야의 세력 재편과 내부 개혁작업을 서두를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보면 이번 재보선은 현실 정치 행위로서 우리 선거의 특징을 그대로 보여줬다. 유권자들은 실제 투표에서 최선을 선택하기보다 차선(次善)을, 또 차악(次惡)을 선택하는 등 대안 추구행위를 끊임없이 한다는 점이다. 재보선에서 나타난 유권자의 표심(票心)을 요약하면 여당보다는 야당, 새정연의 행태에 더욱 부정적인 평가를 한 것이 핵심이다. 더 정확히 말하면 새누리당이 예뻐서가 아니라 대체재로서 새정연이 마땅치 않다는 것이 이번 선거 결과로 집약돼 나타났다.
당장 광주에서 무소속 천정배 후보의 당선은 이른바 '천풍'으로까지 불리며 야권발 정계 개편의 신호탄이 되고 있는 것도 이 같은 맥락 위에 있다. 당내 반대를 무릅쓰고 선거 후 광주를 방문한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가 싸늘한 대접을 받은 것이나 '친노 패권주의를 청산하라'는 퇴진압박을 받고 있는 것도 이 선상이다. 또 정동영 전 의원의 관악 을 출마 후폭풍까지 고려할 때 새정연은 앞으로 정계 개편의 소용돌이 속으로 빠져들 것이 자명해 보인다. 그러나 위기가 기회이듯이 야당이 후속 작업에 성공하면 내년 총선에는 이번 선거결과가 '약'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새누리당도 이번 선거 승리의 기쁨을 오롯이 누릴 처지가 아니다. 김무성 대표는 이를 간파하고 "진정한 승리인지 냉철하게 짚어볼 필요가 있다"고 분위기를 잡아가지만 재보선 압승은 앞으로 총선 국면에서 새누리당에 '독배'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 김 대표는 이대로 가면 '정치 공멸'이 올 수 있다며 긴장감이 늦춰지지 않도록 추스르고 있다. 하지만 앞으로 상향식 공천과 오픈프라이머리 등 정치 개혁작업이 본격화할 경우 이에 비례해 기득권을 지키려는 당내 보수화 흐름도 강해질 것으로 전망된다. 직전 선거의 승리가 당면 선거에서 오히려 부정적 영향이 더욱 컸던 것은 우리 정치사에서 너무 자주 봐온 사례다.
이처럼 이번 재보선은 여야 모두에게 민심을 오판할 소지가 큰 형태로 결말이 났다. 잘못 봤으니 잘못 행동할 수밖에 없지만 선거 다음날 여야가 극적으로 합의한 공무원연금개혁 합의 내용이 이런 오판의 대표 사례다. 당장 333조원(공무원연금)을 아끼겠다고 1,669조원(국민연금)의 부담을 늘리겠다는 지난주 말 여야 합의가 정치권의 기대와 달리 국민 여론의 집중적인 비판을 받았다. 여야 모두 민심이 원하는 '주소'를 정확히 짚지 못한 점에서 보면 이번 공무원연금개혁 합의는 4·29 재보선과 유사하다.
어른의 옷을 입고 있는 아이처럼 우리 정치의 무능과 무소신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그러나 여야 정치권이 4·29 재보선에서 나타난 민심을 제대로 읽지 못하면 나라가 방향을 잃을까 더욱 우려된다. 특히 공무원연금과 달리 세대·계층 등 국민 개개의 이해가 충돌하고 미래세대의 부담 등 다차원적 고려와 동의가 필요한 국민연금 개편을 국회가 한다는 것은 더더욱 받아들일 수 없는 일이다.
온종훈 논설위원 jhohn@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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