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낯선 곳에서 새로운 경험을 강요받으면 인간성이 어떻게 드러날까요? 성경에서 하느님을 본떠 인간을 만들지만, 인간에게는 우상을 금지합니다. 모순 같지만 위로 섬기지 말고 옆에서 찾으라는 얘기입니다. 자신의 세계를 뺏긴 이방인이 그래도 살 이유는 인간 사이의 신뢰죠. 소설에서 주인공의 금제를 푸는 키워드이기도 합니다."
최근 SF판타지 소설 '에뜨랑제'를 선보인 임허규(50·사진) 작가는 책 주제가 신뢰, 그리고 그에 기반한 사랑이라고 설명했다. 불어로 이방인을 뜻하는 '에뜨랑제'는 군사훈련 중 낯선 세계 '피안'으로 소환된 두 남녀 장교가 원래 세계로 돌아가려 분투하는 과정을 그렸다.
'피안'의 초월적 존재 '마스터'는 롤플레잉게임(RPG) 하듯 이들을 극한상황으로 몰아붙이며 통제하고 시험한다. 강화·치유의 힘을 가진 약물은 시험체의 인간성을 말살하고 하나의 '게임 말'로 만드는 도구다. 하지만 두 주인공은 끝까지 약물에 의존하지 않고 잠재능력을 끌어올리고, 힘든 과정에서도 서로 존중하며 인간성과 신뢰의 끈을 놓지 않는다. 결국 그들의 힘은 마스터의 상상 범위를 넘어서고, 역으로 턱 밑까지 치고 들어간다.
지난 2007년부터 2년간 온라인 연재되며 조회수 600만, 2010년 유료 애플리케이션으로 애플앱스토어에서만 1년새 15만 다운로드를 기록했다. 또 2012년에는 전자책으로 2년간 누적매출 1위를 달렸다. 아마존닷컴에 2주 전부터 한국 장르문학으론 처음으로 영문 연재를 시작했다. 그 사이 크게 다섯 번을 고쳤다지만, 수명 짧은 웹소설이 7년이나 정상을 지켰다.
그래도 이는 노파심. 아무리 잘 읽히는 판타지라도 성인 30%가 1년에 책 한 권 안읽는 한국에서 두꺼운 책으로 4권, 총 1,800페이지다. 게다가 작가는 이번 4권이 총 4부작의 첫 부라고 한다. 하지만 작가는 성공을 자신한다. 지난 7년간 검증 받은 이야기의 힘과 스스로 만든 독특한 세계관의 매력을 믿기 때문. "판타지 소설의 전형적 요소, 즉 '반지의 제왕'이나 게임 속 국적불명의 설정을 빌려온 게 아닙니다. 모든 것을 새로 만들어 고유한 세계관에서 나온 이야기의 힘을 믿습니다."
현재 2부 원고를 마무리하고 있는 그는 곧 전자책사업에 뛰어든다. 해외에 국내 콘텐츠, 특히 한국 장르소설을 선보이는 것이다. 컴퓨터공학과 출신에 삼성 전략기획팀, 상장사 CE0 등을 거친 이력을 생각하면 이상할 것도 없다.
"작가가 연재 분량과 주기, 가격 등 모든 것을 정하는 창작자 중심의 플랫폼입니다. 누적조회수 기준의 베스트셀러 산정방식으로 최고의 작품이 가장 돋보이게 겁니다. 흡인력 있는 한국 장르소설은 해외에서도 통합니다. 우선 가장 인기 있는 장르소설 100편을 영어·일본어·중국어·스페인어 등 4개 언어로 번역해 연재할 겁니다. 드라마·음악에 이어 책이 한류를 일으킬 거에요."
사진=권욱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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