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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동 기행] <하> 아시아·아프리카 교차로 오만

사막·협곡·바다 어우러진 중동의 보석… 관광대국 꿈꾼다<br>강수량 많고 온화한 살랄라 최고 휴양도시로 각광받아<br>곳곳 고대왕국 유적도 많아 관광산업 인프라 구축 가속

관광객들이 언덕 위에서 무스카트 시내를 바라보고 있다. 무스카트는 바다와 사막 사이 좁은 지역에 길게 조성돼 있다. 멀리 해상에는 페르시아만으로 들어가는 유조선이 보인다.

이슬람사원인 '술탄 카부스 대모스크'의 중앙 예배실 모습. 2001년에 완공된 것으로 최대 6,500명의 예배자를 수용할 수 있다고 한다.

무스카드 왕궁 외곽을 지키는 성채 전경. 오만은 주요 해상 교통로 상에 위치한 관계로 전국 곳곳에 이런 군사용 성채들이 세워져 있다.

오만산 고급 향수인 '아무아주(Amouage)'의 무스카트공항 내 매장. 오른쪽에 카부스 국왕의 사진이 걸려 있다.


오만은 한국인에게는 미지의 나라다. '오만'이라는 국가명이 우리 발음으로는 특이하게 해석돼 기억하기 쉽기는 하지만 정작 이 나라의 이미지는 한국인에게 낯설다. 오만이 한때 중동과 남아시아·동아프리카를 주름잡은 '패자(覇者)'였다는 것은 실감 나지 않는다. 지워진 기억을 더듬고 중동에서의 한국의 지향점을 찾기 위해 이 나라를 찾았다. 오만을 가기 위해서는 카타르 도하를 경유하는 편이 편리하다. 도하를 떠난 카타르항공 소속 여객기는 오만의 수도 무스카트 국제공항을 1시간30분 만에 도착했다. 도하~무스카트는 서울~오사카 정도의 거리다. 같은 페르시아만 인근 국가라도 무스카트는 도하나 두바이와는 또 다르다. 도하가 도시라면 무스카트는 시골에 가깝다. 고층빌딩은 없고 조만조만한 건물들이 바다와 사막 사이에 넓게 펼쳐져 있다.

직접 오만 땅을 밟지 않아도 지도만 보면 알 수 있다. 아라비아반도 끝에 있는 오만의 지정학적 위치가 탁월하다는 것이다. 중동과 남아시아·동아프리카를 삼각점으로 이을 경우 오만은 그 중간에 위치한다. 아시아의 물건들은 오만을 거쳐 페르시아만·시리아·유럽으로 운반되고는 했다. 또 유럽에서 아시아로 가려면 남아프리카공화국의 희망봉을 돌거나 아니면 이집트 수에즈운하를 거치거나 간에 모두 오만 앞바다를 지나야 했다. 지금도 오만의 해안가에 서면 페르시아만의 석유를 실은 유조선이 먼바다에서 항해하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오만인 여행 가이드들이 관광객들을 가장 흔히 데려가는 곳이 '와디'라고 불리는 계곡이다. 강이 흐르는 계곡이다. 강물이라는 것이 한국인에게는 너무나 익숙하지만 중동 사막에 사는 아랍인들에게는 아니다. 그만큼 귀중한 것이어서 자랑스럽게 보여주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오만은 중동에서는 예외적으로 풍부한 물을 확보하고 있기 때문에 수천년 전부터 문명이 발달했었다. 유목과 함께 농경도 이뤄지고 또 해상무역로상에서 도시도 발달했다. 오만은 이미 기원 전후부터 약재이자 향료인 유향과 몰약의 주요 산지로도 꼽혔다.

오만이 역사상 주요 무대에 들어선 계기는 아이러니하게도 서양제국의 팽창으로 인한 식민지 경험이다. 16세기 초 희망봉을 돌아 아시아로 항해해온 포르투갈 함대에 의해 오만이 정복된다. 포르투갈의 지배는 이후 150년가량 유지됐다. 하지만 오만은 내부의 성장, 포르투갈의 약체화, 그리고 영국 등 다른 제국주의 세력의 역학 관계 등이 얽히는 와중에 1650년 포르투갈을 몰아내고 독립한다.

독립된 오만은 이번에는 반대로 팽창하기 시작했다. 서양제국 세력들이 주춤한 틈을 타서 남아시아와 동아프리카까지 진출했다. 최전성기에는 오만의 영토가 페르시아만 연안, 파키스탄 등 아시아 쪽의 인도양, 잔지바르 등 동아프리카 해안에까지 펼쳐 있었다.

하지만 19세기 중반 내부 분열과 서구세력의 침략이 겹치면서 점차 해외 거점을 잃고 위축되기 시작했다. 다행히 다시 식민지가 되지는 않았지만 19세기 후반부터는 사실상 영국의 보호령이 되는 위치로 떨어졌다. 지금도 정치와 군사면에서 영국의 강한 영향하에 있다.

오만의 부활은 다른 중동국가와 비슷하게 석유가 발견되면서 시작됐다. 오만에서 본격적인 석유채굴이 시작된 것은 다른 중동국에 비해 다소 늦은 1960년대다. 석유의 추정 매량량은 49억배럴로 세계 25위, 천연가스는 8,495억㎥로 27위다. 카타르나 사우디아라비아 등 다른 중동국가에 비해서는 빈약하지만 총 315만명의 인구(그중 57만명은 외국인)를 부양하기에는 충분하다.

미국 중앙정보부(CIA) 월드팩트북 자료에 따르면 2012년의 1인당 GDP(구매력 평가 기준)는 2만9,600달러로 이웃 카타르(10만3,900달러)에는 못 미치지만 결코 작은 액수는 아니다. 참고로 같은 시기 한국은 3만2,800달러다.

현재 오만의 최대 관심사는 역시 석유 이후의 경제다. 이를 위해 인프라 구축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특히 관광산업 구축이 핵심이다. 앞서 말했듯이 오만의 장점은 중동국가 중에서 흔치 않게 녹지를 갖고 있다는 점이다. 하자르산맥에서 흘러내리는 물과 함께 곳곳에 오아시스가 생성돼 있다. 남부지방의 살랄라의 경우 상대적으로 온화한 기후와 많은 강수량으로 중동 최고의 휴양지 중 하나로 각광받고 있다. 아름다운 긴 해안선, 사막, 산악지대, 협곡 등 다양한 자연환경을 골고루 갖추고 있는 셈이다. 고대왕국들의 유적들도 볼 만하다. 포르투갈 시대부터 내려오는 성곽이 곳곳에 있어 중세의 풍미를 더해준다. 오만인들은 자기 나라를 중동의 스위스에 비교하기도 한다.

국제적인 명성을 가진 오만 상품으로 '아무아주(Amouage)'라는 향수가 있다. 오만에서 생산되는 유향과 몰약을 재료로 만든 최고급 향수 브랜드다. 1983년부터 생산되기 시작했으며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는다.

물론 전망이 꼭 밝지만은 않다. 페르시아만 국가들의 공통적인 걱정거리인 인적자원 문제다. 오만도 경제개발 과정에 다른 페르시아만 국가들처럼 외국인들을 끌어들였고 현재 비오만인이 전인구의 25%에 이른다. 석유경제라는 안일에 젖은 오만인들을 교육시키고 자원화하는 것이 긴급한 이유다.



정치체제의 안정성도 관심거리다. 지난 1970년부터 40여년을 통치하고 있는 카부스 국왕은 이미 나이가 74세이고 자식도 없다. 국민의 대의기구도 없이 군주전제 정체를 유지하는 것이 석유경제 아래서는 통하겠지만 장기적으로 불안요인임에는 틀림이 없다.

"건설 플랜트 특수 잡아라"
한국기업 잇단 진출 기대




우리나라에도 오만 소식은 종종 들려온다. 지난달 25일 국내 건설사인 대림산업이 오만의 소하르에 건설될 지분 10억5,000만달러(한화 1조1,000억원) 규모의 초대형 정유플랜트 공사를 수주했다는 기사가 신문의 헤드라인을 장식했다. 다른 중동국가와 마찬가지로 오만이 정유 및 가스플랜트 시설을 잇따라 건설하면서 한국업체의 참여가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소하르는 오만의 3대 도시다. 스포츠에도 오만은 종종 이름을 올린다. 홍명보 감독이 이끄는 올림픽 대표팀은 지난해 2월 무스카트경기장에서 열린 아시아 최종예선에서 홈팀인 오만을 3대0으로 꺾고 올림픽 7회 연속 본선진출이라는 금자탑을 쌓았었다.

오만이라는 이름을 한국인에게 익숙하게 한 것은 인도양에서 우리 선박의 호위 활동을 하고 있는 청해부대 때문이다. 청해부대 소속 군함이 보급을 위해 이용하는 항구가 오만의 남부지방에 있는 제2의 도시 살랄라다. 지난 2011년 1월 삼호주얼리호 피랍사건 때 구출된 석해균 선장이 처음으로 이송돼 치료받은 병원도 살랄라에 있다. 한국의 정관계 인사들도 가끔 살라라를 방문해 청해부대를 위문, 격려하고는 한다.

현지 한국인들은 중동과 남아시아·동아프리카의 교차로에 위치하고 그 중심 역할을 해온 역사를 가지고 있는 오만에 적극적으로 진출할 것을 바라고 있다. 이와 함께 석유경제 이후를 겨냥하며 인프라 확대에 나서고 있는 건설시장으로서도 충분히 매력 있다.

최근 이란과 미국·유럽의 핵협상 타결 후 중동지역 긴장이 해소돼 오만도 그동안 지연됐던 각종 인프라 및 대형 플랜트 프로젝트를 본격적으로 가동할 것으로 기대된다. 이와 함께 페르시아만 연안 국가들로 이뤄진 걸프협력회의(GCC)와 동부 아프리카 등과의 중계무역 및 진출거점으로 유용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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