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천도사’로 불리던 하찬석9단이 별세했다. 향년 62세. 고향이 합천인 그는 주로 대구에 머물면서 경남, 경북 일대의 바둑 발전에 힘써 왔다. 3년 전에 직장암 수술을 받았으며 경과가 아주 좋아 거의 건강을 되찾은 것처럼 보였는데 재발되고 말았다. 재작년 봄에 종로5가의 뒷골목에서 저스트 회원(안영이, 심종식, 권경언, 최창원, 허두표, 최치석, 백우영, 그리고 필자)과 막걸리를 마신 것이 작별주가 되었다. 국수를 2기 우승했으며 78년 가을에는 왕위전, 국수전, 국기전, 최고위전의 도전권을 한꺼번에 따내어 조훈현과 20번기를 벌여 장안의 화제가 된 바 있다. 20번기는 전패로 끝났는데 대구에서 거의 매일 상경해야 하는 살인적인 일정이 결정적인 패인이었다. 그때만 해도 지방에 거주하는 기사에 대한 배려가 전혀 없었다. 견디다 못한 하찬석은 대국 일정을 조정해 달라고 정식으로 요청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지금 생각해 보면 하찬석은 고식적인 기전 운영의 희생 제물이 된 것 같다. 소탈한 그의 웃음소리가 귓가에 쟁쟁하다. 명복을 빈다. 흑3이 놓였을 때 타이젬의 해설자 이춘규3단은 참고도1을 만들어 소개했다. “대략 이런 진행이 될 터인데 의외로 미세하군요. 백이 여유있게 앞서는 줄 알았더니 그게 아니군요.”(이춘규) 그러나 이춘규의 가상도는 그대로 실현되지 않았다. 김기용은 실전보 6의 아래에 잇지 않았다. “그곳을 잇지 않은 것은 현명했습니다. 그런데 백8로 내려선 것은 정답이 아니었습니다.”(김만수) 참고도2의 백1로 젖히는 것이 정답이었다. 이것과 실전보의 흑9로 되는 것과는 엄청난 차이가 아닌가. /노승일ㆍ바둑평론가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